아름다움에 눈 멀다

 

T. S. 엘리엇이 말하기를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내가 지구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4월에 오고 싶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자연은 겨우내 꽁꽁 숨겨 놓았던 생명의 숨을 트면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4월이 되면 꽃집이나 정원을 따로 찾아갈 필요 없이, 사방천지가 꽃잔치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밀려오는 아름다움은 숨을 멎게 할 정도다. 아름다움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다른 곳을 쳐다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오직 아름다움의 대상에게만 집중하게 만든다.

 

4월이 피워내는 아름다움에 눈 멀고 보니, 아름다움이 내게 말을 걸어 온다. 무엇이든지 말을 건네 올 때 그 신비가 벗겨지며 존재가 보이는 것 같다. 아름다움은 결코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초월성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저만치 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잘 발견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움을 발견한 자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아름다움에게로 시선과 생각을 빼앗기게 된다. 이때 발견한 자가 아름다움에게로 다가서는 게 아니라, 발견된 아름다움이 발견한 사람에게로 다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내재성이다. 아름다움은 저만치 있지만, 발견되고 나면 어느새 곁으로 온다.

 

아름다움과의 만남은 수고와 위험을 동반한다. 곁으로 다가온 아름다움은 나도 모르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수행하도록 이끈다. 마치 베드로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바다 위를 걷듯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부활을 경험하듯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롭고 새로운 세계를 누비게 된다.

 

아름다움에 눈 머는 일은 달콤하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에 빠져 있을 때, 눈이 멀어 있을 때 겪게 되는 모든 수고와 위험은 아름다움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신이 마치 천국에 온 듯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에서 벗어났을 때, 눈을 다시 뜨게 될 때,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두려움을 느껴 바다에 빠지듯 삶의 수고와 위험 속으로 매몰되고 만다.

 

궁금하다. 무엇이 진짜 삶의 현실일까.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며 매일의 삶 가운데 지쳐서 사는 게 삶의 현실일까, 아니면 아름다움에 눈 멀어 수고와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사는 게 삶의 현실일까.

 

분명한 것은, 아름다움에 눈 멀었다면 차라리 그 아름다움에 모든 것을 사로 잡혀 영원히 아름다움과 사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의 잔인함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잔인함은 아름다움에 눈 머는 잔인함일뿐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