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구글에서 단발머리를 검색하면 걸그룹 AOA의 노래 단발머리가 제일 먼저 뜬다. 그런데 사실 80년대의 대중문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AOA단발머리보다는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먼저 뜨길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바뀐 탓인지,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검색하려면 단발머리 앞이나 뒤에 조용필을 함께 검색어로 붙여 넣어야 한다.

 

AOA의 노래 단발머리는 스타 작곡가 용감한 형제의 곡이다. 대중가요 작곡가인 그가 자신의 만든 곡에 단발머리라는 제목을 붙일 때 조용필의 대히트곡 단발머리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발머리라는 제목을 붙여 곡을 낸 이유는, 아마도, 조용필의 노래 단발머리가 지니고 있는 아성에 도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용감한 형제의 단발머리는 제목은 같지만 곡이 추구하는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1979년에 발매된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과거지향적이다. 이 곡에서는 한 남자가 자신에게 꽃을 건네던 단발머리 여자(소녀)를 추억한다. 핵심 가사는 이렇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그러나 2014년에 발매된 용감한 형제의 단발머리는 미래지향적이다. 이 곡에서는 여러 명의 다양한 직업군의 여자들(AOA 멤버들로 대표되는)이 역경을 딛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한다. 핵심 가사는 이렇다. “단발머리 하고 지난 날은 잊고 나 새롭게 태어날 거에요…”

 

하지만, 두 곡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발머리의 모티브는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7,80년대의 단발머리는 소위 신여성을 상징했다. 게다가, 조용필의 단발머리에서 노래 되고 있듯이 꽃다발을 건넨 건 남자가 아니라 단발머리 여자였다.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깨는 일이다. 보통 꽃다발은 남자가 여자에게 건넨다. 그 당시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사회적 통념이었다. 그러나 조용필이 그리워하는 여인은 그 사회적 통념을 깨고 꽃다발을 남자에게 건넨다. 조용필의 단발머리의 화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단발머리 여인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을 과감하게 깬 그 여인의 도전정신인지 모르겠다.

 

조용필의 단발머리에서는 사회적 통념을 깨는 도전정신이 감추어져 표현되고 있지만, 용감한 형제의 단발머리에서는 그것이 바깥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뭔가 변화를 꾀하고, 통념을 깨는 행위로서의 의식(ritual)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표현되는데,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은 일을 잠시 내려 놓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긴 머리를 싹둑 잘라 단발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꾼다.

 

두 노래의 뒷면에 흐르는 사회적 합의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단발머리는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의식을 담아내는 메타포이다. 그렇다. ‘단발머리도전정신이다. 머리를 싹둑 잘라내는 마음, 그러한 결정적인 순간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겠는가.


나에게 잘라낼 머리는 없지만, 나는 답답한 현실에 축 늘어진 나의 마음을 싹둑 잘라 단발머리를 만들려 한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흥얼거린다. “단발머리 하고 지난 날은 잊고 나 새롭게 태어날 거에요날씨 참 좋아요 분위기 참 좋아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