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하여

ㅡ 에스겔 아내의 죽음과 성서 해석

 

나는 지난 10년간 약 3천 번의 설교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설교를 해야 하는 ‘설교자의 운명에 갇혀 열심히 설교를 했다. 설교를 하면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 수 많은 스토리이듯이 성경을 구성하는 것도 수많은 스토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스토리는 평범하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다루었던 본문 중에 가장 충격적인 스토리는 에스겔 아내의 죽음이다(24:15-27). 에스겔 아내의 죽음은 에스겔서에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다. 그것도 앞 뒤 문장이 있는 가운데서 아주 짧게 나온다.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24:18). 너무 짧게 나와 성경을 정독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일을 담담하고 짧게 기록하고 있는 에스겔 선지자를 생각하니, 그 사람의 신앙과 내공 앞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하나님은 에스겔 아내의 죽음사건이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표징이 되게 하시고자 에스겔의 아내를 데려 가신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려니…”(24:16). 여기서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의미한다. 에스겔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의 아내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가장 소중한 것을 쳐서 빼앗으신다.

 

아내의 죽음과 함께 그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은 아내의 죽음을 놓아두고 슬퍼하거나 울지 말고, 초상을 치르는 이들이 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오직 조용히 탄식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에스겔 아내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라 표징(Sign)’이다. “이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묻는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일어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일이 예루살렘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게 될 거라는 메시지이다.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성소(예루살렘 성전)’이다. 그리고 자녀를 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아내 죽음의 표징을 통해, 그들이 성소와 자녀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들은 모두 남의 일로 여겨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통 어떠한 일이 자기 자신의 일이 될 때만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성숙한 자, 또는 영성이 있는 자를 가르는 척도 중 하나이다. 성숙한 자 또는 영성이 있는 자는 어떠한 일이 자기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면서 신음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과 끊임 없이 연대(solidarity)’한다.

 

이 부분은 정말로 조심하게 해석해야 할 본문이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깊이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이 부분을 설교하며 막말을 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며 윽박지를 것이다. “하나님께 범죄한 이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길 수 있느니 조심하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이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니, 회개하라!” , 이 본문을 가지고 이러한 막말을 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는 설교자가 아니며, 더 나아가, 인간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것을 넘어, 성령을 훼방하는 중차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했다고 우리의 소중한 것을 마구 빼앗아 가시는 분이 절대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자기 자신(자기 아들)을 내어 놓으시는 분이다. 중요한 것은 그 표징을 우리가 잘 분별하여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회개하여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슬픈 일이 너무도 많다. 누군가에게 슬픈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심판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 위에 구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본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파렴치한 아버지가 아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죽인 게 아니라, 이 세상의 악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그만큼, 악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정도로 무지하고 파렴치한 것이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그들의 부모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말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세상의 악이 세월호 아이들을 학살하였다. 세상의 악은 무구한 아이들을 학살하고도 떳떳하게 낯을 들고 다닐 정도로 무지하고 파렴치하다. 그들의 죽음은 이 세상의 악함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표징이다. 그 표징을 보고도 이 세상의 악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뻔뻔한 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 파렴치하고 뻔뻔한 악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그런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에게 성소와 자녀들을 빼앗긴 예루살렘처럼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내 눈에 기뻐하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강과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줄 아는 연대(Solidarity)’이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부모들에게서 일어난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나의 일이다. ‘표징’인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침묵하며 연대를 소홀이 하거나,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 위에 실현하지 못한다면,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24:23).

 

세월호 참사는 에스겔 아내 죽음의 사건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에스겔 아내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예루살렘 백성들의 일이었듯이,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다. 그러므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기 두려운 자, 지금 일어나 광화문으로 나가라.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만든 악에 맞서 싸우라. 세상 모두가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라. 그것으로 실재하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삶의 스토리를 만들라. 바로 당신의 삶에.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