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6. 11. 13. 01:02

비스듬히

(누가복음 21:5-19)


비스듬히

/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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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은 강인하기도 하지만 연약하다. 생명에는 강인함과 연약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존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기대는 것이 많다.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도 실은 땅에 기대고 서 있는 것이고,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것이다. 땅이 흔들리면 나무도 흔들리고, 허공이 흔들리면 나무도 흔들린다. 기대고 있는 것이 삐끗하면 생명도 삐끗한다. 그래서 생명은 연약하다.

 

2. 살면서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어느 날은 좋다가도 어느 날은 흐리다. 그럴 때면 마음이 변덕스럽고, 신앙이 변덕스러운 것 같아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믿는 자라면 언제나 맑은 날만 가득해야 하는데, 흐린 날이 오면 믿음의 연약함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안 계신가하고 의심이 들기도 한다.

 

3.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목격하고 박해를 경험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사역 중이었고, 특별히 헤롯성전을 중심으로 막바지 사역이 한창 중이었다.

 

4.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5).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성전이라 불렸다. 헤롯성전은 로마 황제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받은 헤롯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지은 어머어마한 규모의 성전이었다.

 

5. 헤롯이 그토록 성전 건축에 공을 들인 이유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정치적 목적만이 존재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평생 적으로 생각했던, 에돔(이두매) 출신 정치가였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정치술로 로마의 유력한 정치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고, 그 세력을 등에 업고 유대 땅을 다스리는 왕으로 인정을 받았다.

 

6. 헤롯성전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서쪽 벽만 남아 있는 상태다. 현재 예루살렘에서 빛나고 있는 건물은 무슬림 사원(바위 사원)이다. 헤롯성전은 바로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예언했듯이, 서기 70년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무너뜨려졌다. 이것은 참으로 허무한 일이었다. 헤롯성전은 BC 20 년경 공사가 시작되어, AD 63 년경 공사가 완료될 정도로 공사 기간이 80여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완성한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7. 헤롯성전은 오늘 말씀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성전 외부 뜰은 한꺼번에 40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고, 그 치장이 아름다울 데 그지 없었다. 사실 BC 20년에 시작된 외부 공사는 9년만에 끝났지만, 내부 공사 때문에 공사 기간이 80 여 년이나 흘렀던 것이다.

 

8.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유대인 신앙의 특징은 성전신앙이다. 그들은 성전에 기대어 살았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성전과 관련된 민족의 크나큰 아픔이 있었다. BC 587년 바벨론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민족적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았다. 그런데, 그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9.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이미 그것을 한 차례 경험한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들도 어떠한 재해가 임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10. 2004년도에 인도양에서 쓰나미(지진해일)가 발생하여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지에서 23만 여 명이 생명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 한국의 어느 설교자는 그 사건을 우상이 판 치는 동남아시아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2005년도 뉴올리언즈를 덮쳤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뉴올리언즈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교한 미국과 오스트리엘리아의 설교자도 있었다. 이렇듯, 기독교인들은 자연재해든, 질병이든, 개인이나 가정에 나쁜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11. 재해가 발생하면, (신앙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불안해지는 법이다. 마음이 극도로 약해지고, 정신적인 패닉이 온다. 거짓 선지자는 그 틈을 파고 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거짓 선지자를 섣부르게 따라 나선 것 때문에 더 심한 멸망의 길을 걷는다. (요즘 한국사회의 최고 핫 이슈인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관계가 바로 이런 관계다. 엄마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박근혜에게 교묘하게 다가선 것이 최태민이라는 사람이고, 그의 거짓 예언에 속아 더 심한 멸망의 길을 걸은 사람이 박근혜이다. 자신만 망한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12. <유대 전쟁사>를 쓴 유대인 출신의 유명한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는 헤롯성전이 로마의 침략을 받기 전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친 상황을 전하고 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전쟁의 소문에 불안해 하던 유대인들에게 그 거짓 선지자들은 성전으로 피신을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거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요세푸스는 그들의 메시지를 듣고 성전으로 몸을 피했다가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단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유대인들의 슬픈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3.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8). 재해 뿐만이 아니라, 신변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또는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 또는 욕망이 생기면 사람들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법이다. 사탄, 또는 사기꾼들, 또는 거짓 선지자들은 그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마음을 적당한 타이밍에 꿰차고 들어오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14. 대한민국에서 점집이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강남이다. 욕심 많은 부자들의 욕망 때문이다. 점집이 가장 잘 되는 시기는 법조인들(,검사)의 승진 심사를 앞둔 시점과 입시를 앞둔 시점이다. 그리고 점집을 간절하게 찾는 모든 사람들은 신변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발생한 사람들이다.

(한국 다녀와서 표정이 밝아진 어느 교인의 이야기 목사님, 점쟁이가 그러는데, 내년부터 좋은 일이 있을 거래요~).

 

1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선 자연재해나, 신변에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는 못된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주님으로 신실하게 섬겼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신변에 일어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6. 오늘 말씀은 그들이 처했던 상황을 매우 아포칼립틱(묵시적, 무시무시한 언어)하게 전하고 있다. 우선, 성전이 무너진다고 한다. 그리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가 있으리라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라고 말한다.

 

17.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이런 게 심판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너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이러한 일이 발생하거든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라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

 

18. 그렇다. 우리의 주변, 또는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때로는 이해 안 되는 힘들고 어려운 일’, 우리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일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증거가 되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두려워 하거나 무서워 하거나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나쁜 일(안 좋은 일, 힘든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거나,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것을 불평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려움은 내가 믿는 바를 증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9.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박해는 불평의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믿는 바를 증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를 당하며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간절히 믿는 데 왜 이러한 박해를 당하게 하세요?’라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박해 앞에서 그들이 믿는 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다른 어떤 것에 기댄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 우리가 매일 같이 경험하는 세상은 악하고 불의하다.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미국의 정치상황, 이렇게 크고 거창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의하고 악한 것들로 즐비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심코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계신데,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해? 세상 살기 정말 힘드네. 먹고 살기 왜 이렇게 힘드냐!”

 

21.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기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왜 하나님이 계신데, 이렇게 세상이 악해?’가 아니라, ‘세상은 이렇게 악하지만, 하나님이 계셔서 다행이야가 우리의 희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22.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는 실제로 어디에 생명을 기대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 정치? 가족? ? (건강)? 순실이? 이러한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들이다.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진 헤롯성전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졌다. 임금과 집권자들이 박해자로 어느 순간 돌아설지 모른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우리를 죽이고 넘겨 준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더군다나,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순실이도 구속되고 말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생명을 기대어 살고 있는가?

 

23.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말 못할 어려움을 안고 산다. 그것 때문에 실제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산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 되었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현재 삶의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이 여러분에게 도리어 여러분이 믿는 바에 대한 증거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24.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1-4).

 

25. 오늘 말씀도 같은 것을 증거하고 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19). 환난(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들) 중에서 우리가 구원 받는 방법은 인내하는 것이다. 이 인내는 무조건 아무 생각 없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지한 인내이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는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위에서 살펴본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에 의지해서,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26. 특별히, 로마서의 말씀 중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에서 우리 말로 연단으로 번역된 것은 영어로 ‘character’이다.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는 ‘character’를 만들어 낸다. ‘Character’는 우리 말로 성격, 성품, 인격, 신분등의 뜻을 갖는다. , 어떻게 인내하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 성품, 인격, 신분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환난 중에도 오히려 기뻐하며 인내하는 그리스도의 성격, 성품, 인격, 신분은 분명 소망을 잃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어떤 것에 생명을 기대어 살지 않고, 영원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 생명을 기대어 살기 때문이다.

 

27. 내가 좋아하는 폴란드의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쉼보르스카의 시 <지도>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지도가 좋다. 거짓을 말하니까. 잔인한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허용치 않으니까.” 이 시는 쉼보르스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시라고 한다. 삶의 마지막,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세상을 들여다 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삶의 회한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인생의 굴곡과 질곡이 없는 이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고백이다. "나는 지도가 좋다. 거짓을 말하니까."

 

28. 우리는 날마다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며 산다. 너무 잔인해서 어떤 이는 눈을 감아버리고, 어떤 이는 딴청을 피우고, 어떤 이는 스스로 생명을 마감하기도 한다. 혹시, '잔인한 진실' 때문에 삶이 힘들고 어렵거든 쉼보르스카처럼 지도를 펼쳐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그가 이 시의 다른 곳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듯이, 세상은 사실 별개 아닐 수 있으니까. "밀림은 나무 몇 그루로 표시되어 있어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29. 혹시, 삶의 현실 앞에서 여러 가지 일로 (사업(직장) 때문에, 가정 때문에, 자녀 때문에, 질병 때문에, 정치 때문에, 또는 순실이 때문에)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고 있는 분이 있다면, 삶의 지도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눈 앞에 펼쳐놓기 바란다. 그리고 그분께 살포시 비스듬히기대어 보시라.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토대이신 우리 주님께서 비스듬히기대어 있는 바로 당신(여러분)에게 위로와 사랑이 가득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속삭여 주실 것이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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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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