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1. 1. 17. 19:17

나다나엘이 필요한 시대

(요한복음 1:43-51)

 

(나다나엘이 필요한 시대, 라는 제목을 듣고, 왜 나다나엘이 필요하지? 나다나엘은 누구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이길래 나다나엘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지? 이런 질문들이 떠올라야 한다.)

 

나다나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이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ㅡ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전문

 

이 시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나왔는지 모르는 사람은 껍데기는 가라를 아주 웃기는 방식으로 해석할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살코기만 오라.” 그러면서 먹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역사를 아는 사람은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고 있는 신동엽의 안타까움에 금방 스며들 것이다. 신동엽이 이 시를 세상에 내놓은 때는 1960년도에 있었던 4.19 혁명 후이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탄압, 그리고 억압적인 정치에 맞서서 민주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사건이 바로 4.19 혁명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고, 박정희에 의한 군부독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4.19 정신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신동엽은 그러한 시대의 아픔과 절망을 시 껍데기는 가라에 담아내고 있다.

 

성경의 인물인 나다나엘과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나는 나다나엘을 생각하며 신동엽의 이 시를 떠올렸을까.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나다나엘의 순교와 관련된 전승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통찰력이 신동엽과 닮았기 때문이다. 우선, 나다나엘은 주님을 전하다 순교할 때 피부 껍데기가 벗겨진 채로 죽었다고 한다. 그러한 전승을 담은 예술작품이 이탈리아의 밀라노 두오모 성당과 바티칸 성 시스티나 성당에 남아 있다.

 

나다나엘의 순교 이야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작품은 밀라노 두오모(대성당/dome이 있는 대형성당)에 세워진 마르코 다그라떼(Marco d’Agrage)의 나다나엘 입상이다(1562). 대개 사도들의 입상은 로마시대 영화에서 보듯이 긴옷을 겉에 두른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나다나엘은 겉옷으로 천을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벗겨진 피부 껍데기를 두르고 있다. (아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