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1. 26. 01:20

2011 1 23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마태복음 4:12-25

제목: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말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사역 시작, 2. 제자들을 부르심, 3. 예수님의 사역(Teaching, Preaching, Healing)

 

우선 예수님의 사역은 이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나사렛이 고향입니다.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갈릴리 호수가에 있던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이사를 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에 의하면,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 15, 16절은 이사야 9 1-2절 말씀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하신 갈릴리 지역이 어떤 지역이었는지를 알아야 이 말씀이 이해 됩니다. 출애굽해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33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 33:51b-53a).

 

열 두 지파 중, 갈릴리 주변에 자리 잡은 5개의 지파가 있습니다. 아셀,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아셀과 납달리, 그리고 스불론은 그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이들은 그 땅의 거민을 몰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실패한 것이죠. 그러니까 갈릴리 지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방민족들에 의해서 타락한 문화가 형성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 가장 무시를 당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 46절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 예수의 소문을 듣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납달리, 스불론 지역은 역사적으로 매우 불행한 지역이었습니다. 북쪽의 국경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늘 이방민족과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전쟁터로 쓰이던 지역이다보니 경제적인 피해가 말도 못했고 이방민족에게 늘 짓밟혔습니다. 실제적으로도, 북이스라엘이 망하기 10년 전에 이미 납달리와 스불론 지역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가장 심한 지역임과 동시에 가장 수난도 많이 당한 지역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지역에서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고, 그곳이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였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불순종이 가장 충만한 곳에서, 순종이 가장 충만하신 분이 활동하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고 싶으셨는지, 금방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순종이 가장 심한 곳에서 순종의 삶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신 것이죠. 바로 불순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겁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 자체가 순종의 삶을 가르치시는 행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에는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드레와 베드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어부였던 이들을 부르셔서,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에 아멘하지만, 성경에 문외한인 사람이 들으면 무슨 인신 매매단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순종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부르심을 받는 제자들의 순종이 중요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불순종의 사람을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자신은 불순종 하면서 다른 사람보고 순종하라면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나를 따르라 Follow me”라고 했을 때 이들은 즉시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물과 가족들을 그 자리에 내려 놓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부르심의 사건 자체가 순종이었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유가 많아서 순종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즉시 응답한 것을 통해서 순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Teaching, Preaching, Heal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르침(Teaching)은 윤리적인 삶에 대한 가르침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이어서 나올 산상수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부름 받은 성도로서의 삶, 즉 말씀대로 사는 삶에 대한 것이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이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마태복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Preaching을 듣지 못해서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해서 욕을 먹습니다.

 

Preaching은 선포라고 하는데, 이는 회개를 불러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은 회개를 불러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기에 왔다는데,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데 불의한 우리들이 거기에 응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부터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회개인데, 이게 철저하게 행해지지 않으니까 그 이후의 어떠한 가르침도 그들의 삶에 깊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겁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병고침의 사역도 굉장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병고침을 베푸신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신 곳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별 다른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병고침 사역을 하셨는가? 병고침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드러내주는 표적이었고, 예수님께서 전하고 다니신 하나님 나라가 바로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병고침은 표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을 이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라,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 나라가 바로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병이 고쳐지는 것처럼 온전함의 나라입니다. 병든 사람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배척당한 다른 뜻이 아니라, 병이 고쳐지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병고침의 역사를 바라면서 삽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그 일을 감당하고 있지만, 병이 고쳐진다는 그 사실 자체가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행위였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순종의 삶을 몸소 보이셨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세월이 얼마나 화살같이 가는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파 보따리 속에서 파가 쑥쑥 자라고 있고, 아주머니 밤 보따리 속에서 밤꽃이 막무가내로 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사랑)해 볼 시간도 없이 인생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방황, 고민, 불순종, 이런 것도 건강하니까 하는 겁니다. 납달리와 스불론 땅에 거하든 사람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 볼 겨를도 없이 , 하다가 나라가 망해 이방민족들과 섞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평생 한 많은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그곳에, 흑암에 앉은 백성에서 큰 빛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지 않았다면 이들은 그냥 그대로 불순종의 아들로 멸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은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가장 불순종이 심했던 곳에 가장 순종의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불순종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종의 삶을 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분의 부르심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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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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