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1. 31. 06:44

2011 1 30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1:18-31

제목: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

 

우리의 삶은 온통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구원을 갈망합니다. 의학이 발달한 이유는 건강의 구원을 위해서고, 경제가 발전하는 이유는 궁핍함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서이고, 기술이 발전한 이유는 생활에서의 구원 때문입니다. 종교의 발전은 삶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소소한 것에서부터 거창한 것까지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는 모두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도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도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활 속에서 바라는 구원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삶의 소소한 구원의 차원으로 성경의 구원을 이끌어 내립니다. 우리는 그저 구원을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 먹고 살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한참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혼동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의 삶 속에 실증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뉴스를 보니까, 한국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 간부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경찰 간부의 이력이 대단합니다. 경찰대학 출신의 엘리트고, 그 중에서도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 선배들까지 제치고 초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경정의 위치까지 올라갔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런 그가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어머니가 죽는 바람에 정확한 살해 원인은 미궁에 있지만, 지금까지 자백한 내용을 토대로 살해 원인을 분석한 결과, 어머니가 떠 안고 있는 사채를 해결하고자 어머니와 짜고 상해보험금을 타려고 그러한 일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된 것이죠. 몸에 상해를 입히기 위해 아들은 강도로 변장하고 밤에 어머니 집에 들어가 자고 있는 어머니 가슴에 볼링공을 수차례 떨어뜨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는 갈비뼈가 6대 부러졌는데, 그것 때문에 몸 속에서 출혈이 너무 많아 그날 밤 갑자기 죽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런 패륜적인,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을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결국에는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이들은 사채에서 구원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지혜가 바로 보험사기였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보험금은커녕 어머니는 죽고 경찰 간부 아들은 쇠고랑을 차게 됐습니다. 구원 받으려다가 더 나락으로 떨어진 형국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는 늘 이렇습니다. 지혜 있는 것 같으나 우리 인간의 지혜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삶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우리 인간의 지혜와는 차원이 다른 지혜가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혜가 뭡니까? 영어로는 Wisdom, 히브리어로는 호크마라고 하는데, 이는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것을 미련하다고 합니다. 지혜의 반대말이죠. 한 마디로, 오늘 말씀은 인간은 미련하고 하나님은 지혜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두고, 인간 편에서는 미련한 일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지혜로운 일이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십자가 사건은 미련한 일입니까? 지혜로운 일입니까? 별 생각 없으십니까? 아무런 느낌이 없으십니까? 십자가의 도를 깨닫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저 십자가를 하나님의 참된 지혜하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감탄이 깊은 사람일수록 신앙이 깊은 것이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일수록 신앙이 없는 겁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22절 말씀을 풀이하다 보면 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줄 알게 될 겁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그렇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도 끊임 없이 표적을 구했습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적이 무엇이요?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일반 사람이 흉내 낼 수 조차 없는 대단한 기적을 베풀기 원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은 그들이 원하던 표적과 기적을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여주는 듯싶었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고 다니셨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표적과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적을 베푸신 것이지, 그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그들의 그릇된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서 기적을 베푸신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도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호기심에서 또는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적을 베푸실 거라는 기대는 품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으로 일어날 뿐이지, 우리의 호기심과 욕심을 채우는 방식으로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적 같은 일이 삶 속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분은 철저하게 호기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정말 온전히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그 분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는 신앙인은 기적 같은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바랐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다 보니까 기적 같은 일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때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등 그들이 생각하는 표적을 보이시는 것 같고, 그들이 원하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 같으니까 떼를 지어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력하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실 때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시는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를 못박으라고 성난 군중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십자가를 진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구원자는 기적을 베풀었던 것처럼 엄청난 힘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그들을 구원하고 다윗 시대의 영광을 되찾아 주는, 그런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신 예수는 그들의 눈에 패배자, 신성모독자, 미친 사람처럼으로 밖에는 안 보였습니다. 결국, 예수는 그들에게 꺼리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헬라인을 보겠습니다. 헬라인은 이방인을 대표하는 민족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세상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두 종류의 사람 밖에는 없습니다. 이방인인 헬라인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혜의 범주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면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눈에 보기에 십자가는 전혀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그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서 그들이 섬기는 신과 같은 어떠한 능력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사람은 극악무도한 죄수뿐이었지 명망 있고 덕망 있는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어떠한 신도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일련에 예수에게서 일어난 사건은 그들이 보기에 미련한 것이지 절대로 지혜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이 구했던 표적도 아니고, 헬라인이 찾았던 지혜도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에 동의하고 그것을 믿는 자를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것을 믿으십니까?

 

위에서 제가 지혜를 뭐라고 그랬죠?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을 적용해서 다시 말씀 드리면, 그리스도가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렇게 느끼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일을 풀어주는 능력이 됩니까?

 

세상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을 가장 크게 발휘하는 것을 뭐라고 가르칩니까? 돈입니다. 직설적으로 질문해서, 돈이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일을 풀어나가는 능력입니까? 세상에서는 돈이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푸는 열쇠라고 세상은 가르칩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에 매어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는 그저 세상살이에서 진짜 능력이고 지혜인 돈을 잘 벌게 해주는 헬퍼(도와주는 사람) 역할을 해주는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게 기복신앙이고, 우상숭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이게 우리 신앙생활의 깊숙한 곳에 침투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표적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구원을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헤프닝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큰 틀에서 보지 못하고, 내 삶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하찮은 수준으로 떨어뜨려 봅니다. 눈 앞에 것만 보고 생각하지, 그 뒤의 것을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그 사실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그 뒤에 있는 부활을 전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것만 생각했지,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컬럼버스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위의 기사에서 보았듯이, 인간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는 인간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실존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인간의 실제 모습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만해서 우리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져서 그렇지, 우리는 우리의 지혜로 일을 풀어나갈 수 없습니다. 위의 기사에서도 보았듯이,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도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지혜로 풀어가는 듯 했으나, 결국 패가망신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 세상의 지혜에 의지할 때 발생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지혜, 세상의 지혜는 당장은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결국에는 문제를 풀어주지 않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정반대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보듯이, 인간들의 눈에는 문제가 꼬여가는 것 같으나, 결국 문제를 풀어낸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으나, 결국에는 참된 구원을 가져다 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받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저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저 십자가는 수단이 아니고 목적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의 은총에 푹 잠겨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가 풀어져나가는 기적과도 같은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을 날마다 체험하시는, 날마다 구원 가운데 거하시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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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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