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아우구스티누스와 40 여년 동역자로 사목에 힘쓴 포시디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죽은 뒤 그에 대한 전기를 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통해 어린 시절과 회심하여 사제의 길을 걷게 된 때까지의 기록을 하고 있는 터라, 포시디우스는 그 이후의 삶을 기록한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쓴 <고백록>과 포시디우스가 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를 함께 보아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대한 포시디우스의 기록은 '찬미'로 가득 차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훌륭한 주교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에 대한 찬미와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된 이 주교에 대한 찬미로 가득하다. 그래서 문체가 매우 겸손하고 간결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평생 자기 시대의 문제들과 씨름했다. 특별히 이단과 열교, 이교도들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했다. 그 결과를 포시디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니교도와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와 이교도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교회로 돌아와 일치하는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보셨던 것이다."(87쪽).

 

포시디우스의 필치에 그려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애로운 사목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을 만나게 되는데, 다름 아닌 발달족의 침입이다. 포시디우스는 반달족의 만행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약탈, 학살, 갖은 고문, 방화, 헤아릴 수 없이 극악한 만행과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저지르며 약탈했다. 그들은 남녀논소 가라지 않았고, 하느님의 주교들이나 성직자들뿐 아니라, 교회의 장식물이나 제구, 교회 건물마저도 모조리 휩쓸어 버렸다."(119쪽)

 

반달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엉망이된 히포시(를 포함한 로마제국의 도시들)의 모습을 진술하고 있는 챕터는 두 눈을 뜨고 보기 차마 힘들 정도다. 포시디우스는 그리스도인과 주교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 기록은 잠시 책을 내려놓고 먼 산을 바라보게 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고문을 이겨 내지 못했고, 더러는 칼에 맞아 죽었으며, 더러는 노예로 전락하여, 영혼과 육신의 온전함과 신앙을 잃어버린 채 악랄하고 가혹한 대우를 받으면서 원수들을 섬기고 있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는 교회에서 사라졌고, 수많은 지역의 교회 건물은 불타버렸으며, 합당한 장소에서 하느님께 드려야 할 장엄한 희생제는 그쳤고, 더 이상 거룩한 성사를 청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설령 청한다 할지라도 성사를 청한다 할지라도 성사를 집전할 사람을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야산이나 암벽굴이나 동굴 또는 다른 요새에 피신한 사람들은 가운데 더러는 잡혀 죽었고, 더러는 헐벗고 생활 필수품이 부족해서 굶어 죽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적들에게 붙잡히지 않았거나 붙잡혔다가 탈출한 교회 지도자들과 성직자들마저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채 아주 비참하게 알몸으로 구걸해야 했으며, 궁핍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조금도 채워줄 수 없었다."(121쪽)

 

우리는 글로 표현된 환란을 읽으면서 마음 불편해 하지만, 이 글에 표현된 당자사들의 삶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가슴이 저민다.

 

성금요일.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한다. 반달족의 침입에 맞선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며 비록 몸은 찢기고 망가졌지만 마음만은 신앙을 지키려 노력했다. 정말 처절한 싸움이다.

 

21세기. 특별히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눈으로 보이는 수난이 적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식과 아우성이 넘쳐난다. 못살겠다고, 사는 게 x같다고 욕이 난무한다. 이는 분명 보이지 않는 '반달족'이 우리의 삶에 쳐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그 보이지 않는 반달족은 우리의 삶에 쳐들어와 위에서 포시디우스가 묘사한 것처럼 우리의 삶을 마구 망가뜨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성금요일. 거룩한 성사를 청하는 사람이 없다. Good Friday와 Easter 시즌을 맞아 Vacation을 떠나는 사람만 많다. 물리적으로 반달족의 침입을 받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마치 반달족의 침입을 받아 무너진 성에 사는 것처럼 성금요일을 맞아 거룩한 성사를 처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드물다. 반달족이 침입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는 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수많은 지역의 교회 건물들이 팔려 상업용도나 주거용도로 변경되고 있고, 그렇다 보니, 예배를 드릴 합당한 장소를 구하기 힘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시대에 마니교도와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와 이교도와 싸웠다. 그리고 인생의 말년에는 반달족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고, 반달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고난 당하는 동료 시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았다.

 

반달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온 도시가 불타고 온 시민이 겁탈 당할 때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피신한 주교나 사제들이 있었던 것 같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남아 있는데도 성직자들이 피신하여 (교회) 직무가 없어져 버린다면, 그것은 양 떼들을 돌보지 않는 삯꾼들의 단죄받을 도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137쪽)

 

환란 가운데서도 한 두 명이라도 공동체가 남아 있는 곳에서 성직자들은 자리를 지키며, 거룩한 성사를 요청하는 이들에게 성사를 베풀고, 필요한 것이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자리를 지키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성직자들의 직무라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엮어 만들어 주신 우리 직무의 사슬을 끊어 버려서도 안 되며, 우리가 섬겨야 하는 교회를 져버려서도 안 됩니다."(129쪽)

 

나는 '우리 직무의 사슬'이라는 말에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슬은 쇠사슬을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쇠사슬로 우리의 직무에 묶여 있다. 교회로 불러 사목의 직무를 맡기신 주님은 우리를 쇠사슬로 그 직무에 묶어 주셨다. 그러니 그 결박을 풀어주실 분은 주님 밖에 없고, 주님이 풀어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그 결박을 우리 힘으로 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직무에 사슬로 묶여 있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반달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극심한 부침을 겪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들과 사목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마니교와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와 이교도의 세력과 한 바탕 전쟁을 벌여야 한다. 차라리 보이는 적이 물리치기 더 쉬운 지 모르겠다. 요즘엔 적들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엇과 싸워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요즘엔 더 치열한 공부가 필요하고, 더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하며, 더 강한 용기가 필요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묘비에 다음 글귀를 새겨넣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오 나그네여, 시인은 죽은 다음에도 산다는 것을 알고 싶은가?

그대가 읽는 그것을 내가 말하나니,

그대의 목소리는 바로 나의 목소리라네."

Vivere post obitum vatem vis nosse, viator?

Quod legis, ecce loquor: vox tua nempe mea est.

 

포시디우스는 후대의 사람들이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겨놓은 거룩한 작품들을 읽으면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포시디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을 통해서 그를 만나는 것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동시대를 살며 그의 훌륭한 인품과 사목을 통해 직접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훨씬 더 복되다고 말한다.

 

작품을 남기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겠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내가 동시대의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산 것이 영광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의 인생은 진주보다 값진 인생이고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그리스도처럼,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섬기는 자에게 이런 영광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소망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