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2. 28. 06:41

2011 2 27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이사야 49:8-16a; 마태복음 6:24-34

제목: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

 

여러분, 앞으로 몇 년 더 사실 것 같습니까? 유엔이 2008년도에 발표한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은 남자 75.9, 여자 82.5세입니다. 미국의 평균수명은 남자 76.9, 여자 81.4세 입니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미국의 평균수명에 맞추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까를 계산하면 됩니다. 이건 평균입니다. 여기서 더 사시는 분도 계시고 덜 사시는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평균수명이 OECD 나라 중에 하위 그룹에 속한다는 겁니다. 의학이 가장 발달된 나라가 미국인데, 그것에 비해 수명은 별로 길지 못하다는 거죠. 그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의 원인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담배와 비만입니다. 세계에서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우는 나라가 미국이고,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이랍니다. 담배와 비만 앞에서는 뛰어난 의학기술도 다 소용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미국은 담배 소비량을 줄이는 일에, 그리고 비만 인구를 줄이는 일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될 거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원래부터 담배랑 술이랑은 안 친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없습니다. 제가 신령해서 담배랑 술이랑 안 친한 건 아니구요, 집안 내력이 그렇습니다. 몸에서 별로 받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목회자 가정이라는 영향도 분명 있구요. 그런데 배가 많이 나와서 걱정입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았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10kg이 넘게 살 쪘습니다. 기본적으로 걸어 다니지를 않으니까, 살이 찌더라구요. 한국 같은 경우는 일부러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아서 살 찔 겨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걸어 다닐 일이 별로 없어서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살이 찝니다. 게다가 기름진 음식이 넘쳐나는 나라이다 보니, 살이 안 찔래야 안 찔 수가 없습니다. 정말 조심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 옛말에 인명은 제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인데 성경말씀과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거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하나님께서 거두실 때까지 잘 보존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내 몸을, 내 목숨을 내가 스스로 단축시키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내 스스로 내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생명을 맡긴 인생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생명을 스스로 해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그 연수를 다하다 죽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연수를 다 누리기 위해서 건강 관리에 신경을 좀 써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한다는 건, 거창한 일만을 주의 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강을 보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을 해쳐가면서 까지 무슨 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담배나 술 같은 거,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은 삼가시고, 비만을 피하기 위해서 운동도 좀 열심히 하십시오. 건강한 사람이 자기 일도 잘 하는 거고, 건강한 사람이 가정도 잘 돌볼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 직장생활도 할 수 있는 거고, 건강한 사람이 주의 일도 잘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리스도인에게 건강은 웰빙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로까지 나가는 겁니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께 늘 기도 드리시고, 건강을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이 건강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수명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말이 나온 김에 건강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기대수명이라는 것을 갖고 삽니다. 뭐 사실 인생이라는 것이 내일 일은 난 몰라요이지만, 우리는 전체적으로 현재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기대수명을 갖고 거기에 맞추어 인생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남자 같은 경우는 76세 정도가 평균수명이니까, 저 같은 경우 기대수명이 38년 정도 되네요. 제가 현재 서른 여덟 살이니까, 살아온 날 만큼 딱 그만큼만 더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겠구나 예상하고 인생을 설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계산해 보십시오. 여자는 81세 정도가 평균수명이니까 거기에 맞추어 기대수명이 얼마나 되시는지 계산해 보시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갑자기 서글퍼지시나요? 사실 우리는 앞으로 살 날이 별로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면서 삽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계산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면 얼마나 인생이 허무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것. 죽을 걸 생각하지 않고, 살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 얼마나 은혜입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사야서 본문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 것을 생각하면서 살지 못하고,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에 떨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처한 현실이 지금 우리의 현실처럼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바벨론에 나라가 망해 남의 나라 땅에 포로로 잡혀와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의 토대가 아무 것도 없어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까지 생각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만큼 불안하고 힘든 일도 없습니다.

 

포로생활 가운데 이렇게 삶이 흔들리고,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은혜가 필요한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구원이 필요한 날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포로생활 가운데 삶이 흔들리고 존재가 흔들려서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이 때가 은혜의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구별된 백성이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죽여도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이고, 살려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이죠. 바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것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1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불신앙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인도 자식을 잊지 않고 긍휼이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버릴 수 있고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여인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비교도 안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것을 아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

 

이것을 절대적으로 믿으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인 것을 온 삶을 통해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승리가 바로 부활입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또 하나의 본문인 마태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의 삶이 구분되어 나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섬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니다. 재물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음식이나 의복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이 어디에 놓여져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방인은 인생이 재물과 염려에 놓여 있습니다. 재물이 하나님이고, 염려하느라 몸을 상합니다. 염려는 지나치게 거기에 집착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딴 데 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만 집중합니다. 삶이 굉장히 심플합니다. 깔끔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분주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것과 같은 포로생활을 많이 겪습니다. 즉 삶의 토대를 잃어버리는 일을 자주 경험합니다. 직장을 잃게 되거나, 사업이 잘 안되거나, 자식이 속을 썩이거나, 부부 사이에 금이 가거나, 친구와 틀어지거나, 가족과 불화가 있거나, 또는 건강을 잃게 되는 등 삶의 토대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이건 낭만적인 일이 아니고, 모두 우리의 삶을 흔드는 현실이고, 우리의 마음을 후벼 파는 아픈 일들입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하는 가슴 아픈 일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가 은혜의 때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과 /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과는 상관 없는 이방인이 이 때 갈라집니다.

포로생활과 같은 일을 겪을 때, 그 때가 바로 은혜의 때이고 구원의 날이기 때문에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되게 하나님을 붙듭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구별의 원리를 붙들어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는 겁니다. 성경을 찬찬히 잘 보십시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것을 받으시는지요? 구별된 것만 받으십니다. 거룩한 것만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설교를 통해서 거룩이란 무엇인가를 말씀 드렸습니다. 구별된 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일상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것을 놓치고 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놓치고 삽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구원 사건이 됩니까?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에 당하신 그 날도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는 강도들이 함께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왜 오른편, 왼편의 십자가 처형은 개죽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구원 사건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같은 행위도 구별된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인도 드리고 아벨도 드렸습니다. 드린 행위는 같았지만, 구별된 것을 드렸느냐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여러분, 장 목사가 여러분에게 왜 중요합니까? 세상에 다른 목사도 많은데, 왜 여러분은 장 목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장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까? 제가 잘생겨서요? 제가 힘이 세서요? 제가 공부 많이 해서요? 제가 목회자가 25명이나 되는 집안 출신 목사라서요? 제가 3대째 목사라서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장 목사를 구별하셔서 여러분께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것 외에 여러분께서 저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여러분에게 보내신 담임목사에게서 말씀의 은혜를 받으려고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담임목사 말씀에는 은혜 못 받으시면서, 본인에게 구별되어 보냄 받은 목회자가 전혀 아닌 분들, 설교 씨디나 기독교 방송 같은 것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건 은혜가 아니라 영적인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합니다. 그걸 은혜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어야 건강해지는 겁니다. 외식하면 내가 맛있는 거 골라먹을 수 있으니까 그때는 맛있을지 몰라도 결국 외식은 몸을 상하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여러분에게 보내신 담임목사의 말씀에 은혜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들의 영혼이 강건해지고 여러분들에게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제가 왜 여러분을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하고, 말씀과 양육을 위해서 불철주야로 수고해야 합니까? 그래야 먹고 사니까요? 저는 여러분이 내는 헌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예화). 제가 여러분을 위해 수고하는 이유는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저에게 붙여주신 거룩한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왜 이 교회에서 헌신하고 봉사합니까?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세우신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내 발로 걸어 들어온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이 교회로 보내셨기 때문에 거룩하게 헌신하고 봉사하는 겁니다.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오신 분들은 자기 발로 걸어 나가시겠지만,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이 교회로 보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분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헌신하고 봉사할 것입니다.

 

구별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가슴 속 깊이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별해서 드리십시오. 헌금도 돈 있으면 드리고 돈 없으면 안 드리고 그러지 마시고, 구별해서 드리십시오. 제가 지금 헌금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구별의 은혜를 말씀 드리는 겁니다. 목사가 헌금 얘기 하더라고 시험에 들거나 험담하지 마십시오. 괜히 엉뚱하게 걸려 넘어지지 마십시오. 헌금은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구별이 중요합니다. 1불을 드리더라도 두 렙돈을 구별해 드려서 예수님께 칭찬 받았던 과부처럼 그렇게 구별해서 드리십시오. 드릴 헌금이 없을지라도, 구별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특별히 제가 예배와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은데요, 시간 있으면 기도하고 시간 없으면 기도 하지 않고 그러지 마시고, 시간을 구별해서 기도하십시오. 많은 분들이 교회의 공적인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을 쉽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의 공적인 예배 시간과 기도회 시간은 교회의 형편과 각자 개인의 형편에 맞추어 우리 인간들이 정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구별해서 거룩하게 세우신 이 교회에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정해주신 예배 시간이고 기도회 시간인 겁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해 주신 그 시간에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사모하고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정말 불가피하게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모두 마음의 문제이지요. 정말 불가피하게 그 시간을 못 지키시는 분들은 자신의 형편에 맞게 기도하되, 꼭 시간을 따로 떼어 구별해서 기도 시간을 정해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사랑하는 컬럼버스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이방인은 구별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되게 행동합니다. 무엇이든지 구별되게 하나님께 드립니다. 시간 있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렇게 드리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무엇을 하든지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구별된 것을 받으시고 그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 예수 그리스도의 핏물로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은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더 구별되게 행동합니다. 힘들고 어려운데 잠이 옵니까? 보따리 싸서 구별된 장소인 성전에 와서 밤새 기도해야죠! 힘들고 어려운데 왜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보내신 담임목사에게 기도 부탁을 안 합니까? 힘들고 어려운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별하셔서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려는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을 외면할 수 있습니까? 열 일 제쳐 놓고 머리 디밀어야죠!

 

왜 그래야 하는 줄 이제 깨달으셨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이 교회 나와라, 목사한테 잘 해라, 헌금 해라, 예배 잘 드려라, 아침 기도회 왜 안 나오냐? 등 시시콜콜한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말씀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말씀, 어렵고 힘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는 영적 원리를 말씀 드린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때,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받는 은혜와 구원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리를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처럼 아무렇게나 드리지 마시시오. 제발.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구별된 것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회복해 주시고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인생입니다. 아멘.


* 사실, 이번 주 설교는 제 스타일의 설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많은 은혜를 받으시더군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주일설교였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교인들과 이제 성령 안에서 교감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제 교인들이 알아듣더군요. 이 설교를 들으면서 교인들이 많이 울더라구요. 무슨 감동적인 스토리가 들어 있는 설교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 설교를 통해 '구별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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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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