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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30 할 수 있을 수 없음

할 수 있을 수 없음

 

시인이 따로 없다. 철학자는 곧 시인이다. 시인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게 끔, 보이는 세계 뒤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인은 사람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기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북극성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만난 한병철은 철학자이라기 보다 시인이다. 그는 철학의 언어로 정확하게 시인의 임무를 해내고 있다. 놀랍다.

 

그가 폭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체제해야 한다의 타자 착취 사회가 아니라 할 수 있어야 한다의 자기 착취 사회이다. 에고는 타자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강요를 당하면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면 일차적으로 에고는 거기에 대해 저항한다. 그러나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체제 내에서는 해야 한다의 형태로 타자에 의한 강요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의 형태로 자기 자신에 의한 강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떠한 일에 대한 동기가 타자에 의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생기기 때문에, 에고는 이것을 타자에 의한 강요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내적동기에 의한 자발적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자기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있다의 내적 동기에 사로잡힌 에고는 주어진 일에 대한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 착취가 일어나고 결국 자기탈진(소진)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할 수 있어야 한다에 대하여 만약 에고가 할 수 없다고 곧바로 대항하면 이는 타자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 낙오의 의미가 되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자기 모멸감이 발생하여 결국 에고는 우울증이나 신경증환자로 전락하여 종국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한병철은 할 수 있어야 한다에 대한 저항은 할 수 있을 수 없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할 수 있다의 체제에서 벗어나려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데, 그것에 대한 부정은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할 수 있을 수 없음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타자에 의한 착취는 저항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의한 착취는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하여 해야 한다는 구호를 감추고, ‘할 수 있다는 구호를 통해 동기를 부여하고 자발성을 이끌어 내며 자기 주도 프로젝트를 조성하여 스스로 자발적인 착취가 일어나도록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착취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자기를 착취하느라 자기를 소진하고 있다. 성과가 없으면 다른 이를 탓하지 못하고 부족한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할 수 있다의 구호 아래 자기 착취를 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내의 사람들은 자기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무능력한 낙오자가 될까 봐 밤낮으로 자기를 달달 볶아 댄다. 탓하거나 저항할 상대(타자)가 없기에, 그는 그저 자기 자신만 탓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참으로 힘든 사회에 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적이 없기 때문에 저항할 수도 없고, 공공의 적을 향해 연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우울하고 외롭다. 더 끔찍한 현실은 자신이 지금 그러한 사회 체제 내에서 스스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 아래 내일을 향해 희망을 품고 열심히달려가지만, 결국 인생의 끝에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런 비극적인 삶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소멸되어 가는지도 모른 채 어느 순간 끝장나버리는허무한 삶에서 탈출하여 인생을 의미 있게 마루리지을 수 있을까? 우선, 우리가 어떠한 체제 내에서 살고 있는지를 충분히 숙지하는 일부터 필요한 것 같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니오(Neo)’가 결국 매트릭스에서 깨어나오듯이, 그러한 깨어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신실한 동지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나는 그 길을 간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