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1. 11. 01:34

내 삶의 여리고성

(여호수아 6:15-27)

 

유명한 여리고 성 이야기이다. 여리고 성은 가나안 최고(最古)의 성이었다. 가장 오래된 성이었다. 그 성이 무너졌다. 엄청난 일이다.

 

첫 번째 질문: 여리고 성이 무너졌을 때, 산 자는 누구입니까?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17)

è 라합과 그의 가족들은 모두 살았다.

 

두 번째 질문: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에 사용된 도구는 무엇입니까?

이에 백성이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패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20).

è 제사장의 나팔소리에 맞춰 소리지르다! (말씀에 맞춰 행했을 때)

 

세 번째 질문: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26).

è 저주를 받을 것 (맏아들과 막내아들을 잃을 것 자손이 중요한 시절에 자손을 잃는 것, 모든 것을 잃는 것)

è 열왕기상 1634절에 보면 (누가 찾아서 읽어보시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여리고 성을 재건하려 했던 인물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히엘이었다. 히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이름을 가진 자가,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살았다는 뜻이다.

 

내 안에 있는 여리고 성에 대하여 말해보자. 최고로 오래된 것 오래된 나쁜 습관, 오래된 불순종.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성이 무너지면, 우리의 삶이 무너질까봐.

 

그러나, 그러한 걱정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위의 히엘처럼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도 우리의 삶은 안전하다. 죽지 않는다. 구원 받는다. 더 잘 된다.

 

우리는 그것을 라합에게서 본다. 라합이 구원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면서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행동했던 히엘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사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내 삶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면, 구원 받는다. 우리의 영혼과 몸을 서서히 죽이는 오랜 나쁜 습관이나 오래된 불순종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방법도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 안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인간적인 결심으로 한다. “그래, 올 해부터는 이거 안 할거야. 또는 그래, 올 해부터는 이거 할거야.” 그런데, 얼마 못 가서, 그러한 결심들이 희미해지고, 여리고 성이 내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 절망만 깊어질 뿐이다. ‘나는 역시 안 돼.’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사용한 도구는 결심이 아니라, 말씀과 순종이다. 그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지이렇게 결심하고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 말씀에 순종해서, 엿새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씩 조용히 돌고, 마지막 칠일 째는 일곱바퀴 돌면서, 마지막에 제사장의 나팔 소리에 맞춰 함성을 질렀다.

 

내 삶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만나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은 그 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지 몰라,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또는 그들의 계략과 힘으로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을 것이다.

 

이것은 다음 성이었던, 아이 성 사건에서 드러나는 일이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만나고, 그 말씀대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아이 성을 무너뜨리러 나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만나고 가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나갔다가, 엄청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 나가서 아이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본다.

 

내 삶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나 있다.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열망은 있으되,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은 없지 않은가.

 

새해 첫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올 한 해,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 삶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바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만나지 못하면, 라합처럼 구원 받지 못할 뿐더러,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는커녕, 아이성처럼 도리어 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열망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더 간절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면,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삶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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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