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1. 4. 08:52

행복하자

(요한 1 3:13-24)

송구영신예배


1938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어른의 성장에 관한 연구]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거의 80년 동안 진행된 이 연구에서 밝혀내고자 한 것은,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가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질 좋은 관계가 행복을 불러온다.”

 

이 연구를 지위하는 월딩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찾아낸 결론은, 자신의 인간관계에 제일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 그리고 남들과 연결관계가 강한 사람,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 깊게 연결된 사람이 더더욱 오래 건강을 유지했습니다.”

 

질 좋은 인간관계라는 개념에 대해 정의에 관해서도, 윌딩거 교수는 당신이 믿을 수 있으며, 당신이 당신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가 그러하다.”고 말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당신이 비난받는 기분을 느끼지 않고, 당신이 언제든지, 상대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관계는, 가족이거나,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와의 우정일 수도 있다.

 

그 프로젝트에서는 돈과 명예와 행복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는데, 결론적으로 돈과 명예는 일종의 장막이나 연막의 역할만 할 뿐 행복의 조건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가 있으면 더 행복하거나 남들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거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에서 돈과 명예는 새로운 인간관계는 가져올지언정, 그들 중 대부분은 결코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위해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만, 그와 연결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진정한 애정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사랑이 질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낸다. 도식은 이렇다. 사랑 à 질 좋은 관계 à 행복한 삶. 쉬워 보이는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 질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연구에서 말하기를 질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실함과 친절함, 인내심, 그리고 친밀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인이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사랑하는 영국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영국의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이라는 소설이 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예전 20대 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좀 지루했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첫인상>이었다. 한 남자(다시)와 한 여자(엘리자베스)가 서로가 서로에게 받은 첫인상 때문에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결국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남자가 오만하다고 생각했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편견을 가지고 본다고 생각했다. 오만과 편견은 서로에 대하여 오해를 갖게 만들고, 관계의 평행선을 긋게 만든다. 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은 남자가 자신의 오만을 인정하고, 여자가 자신의 편견을 벗어던지기로 한 순간부터이다. 이 말은 이러한 것을 뜻한다.

 

편견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고전 결박을 풀다, 154)

 

질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첫 번째로 방해 요소가 되는 것은, 위의 소설이 말하고 있듯이, ‘오만과 편견이다. 오만은 내가 남보다 약간 잘난 요소가 있으면 남을 깔보는 것이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남자가 오만했던 이유는 남자는 귀족이었고, 여자는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견은 자기와 다른 요소가 있으면 마음에서 밀어내는 것을 말한다.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편견을 가진 이유는 남자가 자신과 다른 신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오만과 편견을 발견한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행복의 조건인 질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큰 해가 되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서라도 내 안에 있는 오만과 편견을 조금씩 깨 나가는 게 좋다.

 

오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다. 성경의 말씀은 정말 아름답다. 이보다 아름다운 말씀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14). 사랑하지 않으면, 죽은 자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얼마나 죽은 자처럼 사는가. 끔찍하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산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5).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살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살인자로, 흉악범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6).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신앙과 정비례한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고, 사랑이 많다는 것을 말한다. 신앙이 좋다면서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주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8). 나는 이 말씀을 사모한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를 실천하기 위해서, 결혼 7년 주년 때, 꽃다발이나 선물대신 생명보험을 들어서 집사람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했다. 우리 집사람은 매일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정말 나를 사랑하면, 이불부터 개라고. 말과 혀로는 하늘의 별도 수백 개 따다 주지만, 행함과 진실함으로는 설거지 한 번 안 하는 게 남편들의 형편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꿈꾼다. 한국에 자이언티라는 가수가 있다. 목사님 아들이다. Zion은 시온을 말하고, T는 십자가를 가리킨다. 자이언티는 시온(예루살렘, 골고다)의 십자가라는 뜻이다. 목사님 아들답게 이름도 복음적이다. 어머니가 목사이고, 아버지는 택시기사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양화대교>라는 노래가 있다. 정말 유명한 노래이다. 가사가 이렇다.

 

[Verse 1]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Verse 2]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 날의 나를 기억하네

기억하네

 

[Hook 1]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Verse 3]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백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행복하자.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버드 프로젝트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일서의 말씀이나,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사랑하라.

 

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시 십자가에서 예수를 이렇게 표현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괴로웠던 이유는 십자가에 달렸기 때문이고, 예수가 행복했던 이유는 그가 모든 인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 달린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23). 사랑하는 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인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명령)이다. 사랑하는 일이 우리의 계명이라는 뜻은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도식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 à 질 좋은 관계 à 행복한 삶. 나는 새로운 해를 맞아 여러분과 하나님 앞에서 선언한다. 나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힘써 지킬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한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계명, 사랑하는 일을 성실히 행하는 자에게, 행복의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는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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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