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1. 13. 05:48

대공무사(大公無私): 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는 뜻


춘추시대 진평공이 기황양이라는 자에게 물었습니다. "남양현에 장 자리가 비어 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적당하겠는가?" 기황양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습니다. "해호를 보내면 반드시 훌륭하게 임무를 해낼 것입니다." 평공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대는 해호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 기황양이 대답했습니다. "공께서 물으신 것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에 관한 것이지, 해호가 제 원수인지 아닌지를 물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여 임명된 해호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얼마 후, 평공이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조정에 자리가 하나 비어있는데, 누가 적임자인가?" 기황양은 대답했습니다. "기오가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공이 이상하다는 듯 여기며 반문했습니다.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니오. 어찌 아들을 추천할 수 있겠소." "공께서는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신 것이지, 기오가 제 아들인지 아닌지를 물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 기오는 모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십팔사략(
十八史略)-

 

우리는 공평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공평한 대접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거나, 공평하게 일을 처리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호강하고, 누구는 부모 잘못 만나서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공평을 내 마음에 흡족한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마음이 흡족하면 그것을 공평하다고 느낍니다. 도대체 공평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공평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죄 없는 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공평합니까? 십자가 사건은 이 세상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힘 없는 사람이, 죄 없는 사람이 무고하게 꺾이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 몫을 조금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마음에 만족할 만큼 자기 몫을 지키지 위하여 세상을 향해 투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은 불평공하게, 그렇게 끝나버리지 않았습니다. 공평하지 못하게 죽은 예수님이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공평하지 못하게 죽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공평하지 못한 세상을 비웃으셨습니다. 공평치 못한 세상을 바로 잡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공평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외에는 그런 자리가 없습니다.

 

공평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무엇인지 깨달은 만큼 공평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무엇인지 깨달은 만큼, 공평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지 하면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공평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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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