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3. 29. 23:35

도남(圖南): 붕새가 날개를 펴고 남명(南冥)으로 날아가려고 한다는 뜻으로, 웅대한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해(北海)에 곤()이라는 고기가 있다. 그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고기가 화해서 붕()이라는 새가 된다. 붕새의 등은 그 길이가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한번 날아 오르게 되면 그 날개는 하늘을 덮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새는 바다에 물결이 일기 시작하면 남쪽 바다로 옮겨가려 한다. 남쪽 바다는 천연의 못이다.” - 장자(莊子) –

 

기독교에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에 대한 교리가 있습니다. 이는 의화(義化, Justification)와 영화(榮化, Glorification)의 중간 단계인데, 사실 편의상 단계를 구분해 놓은 것일 뿐, 실제 믿음의 세계에서는 이 단계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이신칭의의 교리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이 바로 믿음의 순간인데, 그 순간 우리는 의로운 사람으로 일컬음을 받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정말 의로워져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신칭의란 풀어서 설명하면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수동적인 상태입니다. 자연적으로, 저절로 또는 내 힘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의로움이 덧입혀 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칭의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 유명한 명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 (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위의 고사성어에 빗대어 말하자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므로 북해의 곤이라는 물고기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만큼, 인간의 존재는 그 귀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자체가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너무도 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창작물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물건 자체가 귀하기 보다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명성 때문에 그 사람이 만든 물건도 귀하게 취급 받지 않습니까?

 

곤이라는 물고기가 화해서(변해서) 붕이라는 새가 되는 것처럼,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화해서(변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곤이 변하여 붕이 되어 웅대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처럼,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인으로 변하여 웅대한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과정 없이 곤이 붕으로 변하는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원대하고 웅대한 일을 이루어드리는 하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루는 웅대한 일들은 모두 이 땅 위에서 썩어질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웅대한 일을 이루고 싶다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화되지 않으면, 즉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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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