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1. 7. 14. 00:51

무안(無顔): 부끄러워서 볼 낯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

'무안색(無顔色)' 또는 '무색(無色)'이라고도 합니다. '얼굴이 없다'라는 뜻으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하거나 상대편을 대할 면목이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이 지은 '장한가(長恨歌)'에는 당나라의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임금님을 모시게 된 그녀 / 눈을 돌려 한번 웃으면 / 백 가지 아름다움 피어오르니 / 아무리 곱게 화장한 궁녀들도 / 그 앞에서는 얼굴빛이 없다." 이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이 성어(成語)는 궁녀들의 고운 얼굴이 무색하게 된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양귀비 앞에서는 궁녀들도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양비귀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양귀비의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십자가에서 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아름다움은 양귀비의 그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십자가의 아름다움은 역설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십자가는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미련한 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18). 우리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좆는 자들이 아니고, 십자가에 나타난 역설의 아름다움을 좆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좇아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진리인 줄 알고 사람들을 좇아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타락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올바른 감각, 즉 올바른 분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으로도 통합니다. 올바른 감각, 올바른 분별력을 지닌 자들은 십자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리임을 선포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더 아름답게 보고 있습니까? 양귀비입니까? 십자가입니까?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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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