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3. 7. 11. 06:16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창세기 28:10-19)

 

1. 구약의 족장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네 명의 족장.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신앙을 형성해 나간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신앙은 한 순간에 이룰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삶의 여정인 것 같다. 내가 무슨 교리를 믿는다고 해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안 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신앙을 곧바로 생성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여행과 같다. 생명의 여행. 또는 생명으로의 여행.

 

2. 족장 중에 야곱이라는 인물을 만나면 생각이 조금 복잡해진다. 거짓말로 장자권을 빼앗아 달아나는 것을 보면 야곱은 그렇게 의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영웅다운 면모도 없다. 그런데 왜 야곱은 당당히 족장의 반열에 들어 신앙의 아버지가 되었을까? 무엇이 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으며, 무엇이 그를 신앙의 아버지로 만들어 주었을까? 우리는 족장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

 

3. 야곱은 위기를 자초한 듯싶다.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것 때문에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했다. 아버지 이삭은 죽을 날이 가까워 형 에서의 살의를 막아줄 힘이 없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 칠 수밖에 없었다. 야곱은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 땅을 향해 무조건 길을 나섰다. 그에게는 오직 목숨을 건져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야곱은 도망쳤다. 그리고, 본문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야곱은 깜깜한 밤에 ‘한 곳에 이르렀다’. 그곳이 어딘지 몰랐다.

 

4. 그런데 거기서 야곱은 놀라운 경험을 한다. 지친 몸을 바닥에 누이고 잠이 들었는데, 엄청난 꿈을 꾼다. 성경은 그 꿈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히브리어 ‘베히네이’를 네 번 사용하여 표현한다. 보라!’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보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5. 우리나라 말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히브리어 원어는 어떤 긴장을 조성한다. 야곱은 ‘한 곳에 이르렀다.’ 여기서 한 곳은 히브리어 ‘하마콤’인데, 바로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우연히, 뜻밖에 만나게 될 것을 넌지시 지시하고 있다. 히브리어를 아는 사람들은 야곱의 이 이야기를 읽어 나가다가, ‘하마콤’이라는 용어에 이르러서, 긴장할 것이다. ‘와, 이제 곧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겠구나.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숨죽여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갈 것이다.

 

6. 야곱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 그의 이야기가 우리의 신앙을 ‘좋은 신앙’으로 안내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정말 우연히, 뜻밖에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위급한 상황은 하나님과의 우연한 조우를 더욱더 부각시켜 준다. 야곱은 집에서 멀리 떠나 혼자 위험에 처한 중에 하나님을 만났다. 야곱은 어두운 밤 중에 있는 사람이었다. 생명이 간당간당한 상황에 던져진 사람이었다. 희망보다 절망이 컸고, 삶보다 죽음에 가까웠던 사람이다.

 

7. 지난 몇 주 사이에 보았던 신문 기사 중 마음에 남는 기사가 하나 있다. 가수 최성봉의 죽음이다. 2011년 코리아갓텔런트를 통해서 혜성처럼 등장한 최성봉이 최근 자살하여 죽었다. 3살 때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원과 길바닥을 전전하며 살았던 최성봉은 어느날 우연히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되고, 때로는 귀동냥으로, 때로는 누군가의 호의로 성악을 배웠다. 그리고, 코리아갓텔런트에 출연하여 심사위운들을 놀래키고, 그 이후 인생에 꽃이 피는 듯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거짓 투병 사건이 탄로나 대중의 뭇매를 맞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지난 달(6월) 20일, SNS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여 죽었다.

 

8. 최성봉의 죽음에 대한 후속 기사를 보면,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는 가족이 없어서 무연자 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례식도 제때 못 치루고 있다는 기사였다. 최성봉의 죽음과 야곱의 이야기가 오버랩 됐다. ‘어두운 밤에 있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는 어두운 밤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두운 밤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은 밝은 빛 가운데 있다고 자신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두운 밤을 지나게 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 불현듯 놓이게 될 수 있다.

 

9. 나는 최성봉의 죽음을 기사로 접하며 다시 한 번 ‘친구 되어 주기’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았다.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그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겠구나’하는 다짐을 했다. 너무 나의 일, 나의 고민에만 파묻혀,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어둠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혹시 내가 어두운 밤을 맞이하거든 당황하지 말고, 야곱 이야기를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어두운 밤은 우연히, 뜻밖에, 준비를 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0. 내가 오늘 최성봉의 이야기와 야곱의 이야기를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장례조차 치르고 있는 그를 위로하고 싶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길! 그리고, 좀 더 마음을 열고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주라는 것이다. 마음을 열어 친구가 되어 주는 것도 쉽지 않고, 마음을 열고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어둠’을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 어둠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어둠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곁에 두는 것이다. 그 친구는 의외로 평소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아닐 수 있다. 그러니, 서로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11. 무엇보다, 우리는 야곱의 이야기, 야곱이라는 족장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신앙이란 이야기를 품는 것이다. 어두운 밤에 있던 야곱은 가장 중요한 것을 경험했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장소, 전혀 기대하지 못한 시간,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 우리가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것을 아낌없이 나눌 때,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려고 마음을 활짝 열 때, 그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12. 무엇보다 사는 게 힘든 이들이 많은 이 때에, 즉 누군가의 사랑이 그리워 몸부림 치는 사람이 많은 이때에, 우리는 더욱더 누군가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어줄 필요가 있다. 1945년 1월, 아우슈비츠에서 독일 군인들이 병자들만 남기고 도망친 후, 열흘 동안 추위 속에 아무 식량도 없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프리모 레비가 동료에게서 빵 한 조각을 받아 나누어 먹은 장면을 기억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 “처음으로 죄수에서 인간이 되었다.” 어두운 밤에 있는 중에는 아무리 조그만 사랑의 나눔도 생명을 보듬고 살릴 수 있다.

 

13.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우리가 나눌 이 빵과 포도주도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준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오늘 간증도, 오늘 찬양도, 모두 이것을 가리킨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혹시 내가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다면, 바로 그 어둠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 어둠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빛으로 나아오길 빈다. God is here. I am your friend. Don’t worry. Be strong.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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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