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5. 26. 01:28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 /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공자는 자신의 도가 한 가지 원리로 꿰뚫어져 있다고 제자인 증자(曾子)에게 말했는데 증자는 그 한 가지 원리라는 것이 '()' 즉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과 '서()' 즉 자기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봐서 남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는 그 원리가 '()'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나 '일관(一貫)되다'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 번에 끝까지'라는 뜻으로 변형되어 쓰이기도 합니다.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이인편(里仁篇)'

 

‘천자문(千字文)은 한자를 “하늘 천()에서부터 “어조사 야()까지 천 개의 한자를 익히기 쉽도록 잘 배열 해놓았습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해서 '언재호야(焉哉乎也)'의 어조사로 끝나는데, 자연 현상부터 인륜 도덕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글귀를 수록하여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자문을 ‘일이관지’ 하는 원리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 39, 신약 27권 해서,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66권을 ‘일이관지’ 하고 있는 원리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인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늙어 죽는 것에까지 걸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일이관지’ 하고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분은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처럼 낮고 낮은 땅에 오셔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신 것일까요? 무슨 원리가 그분의 십자가 사역을 ‘일이관지’ 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한 가지로 묶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너무도 모르는 것이 바로 그 원리 입니다. 궁금하신가요?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틀림 없이 동의하실 겁니다.

 

천자문을 관통하는 원리도, 성경을 관통하는 원리도,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는 원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리도 모두 이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천자문을 외면서 우리는 생명의 원리를 깨달아 가고,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거기에서 참된 생명을 발견하고, 우리의 인생도 생명을 향한 갈구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그 자체이시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리 또한 생명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참된 생명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명이 손에 안 잡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생명이란 알다가도 모르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된 생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분께 나아와 참된 생명이신,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귀면 사귈수록 생명이 손에 잡힐 겁니다. 정말입니다. 참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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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