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4. 26. 02:41

망양지탄(望洋之歎):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감탄한다는 말 / 남의 위대함을 보고 자신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한다

 

먼 옛날 황하에 하백(河伯)이라는 강의 신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자라가 해 뜨는 쪽에 있는 북해(北海)가 훨씬 크다고 말했습니다. 하백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배 더 넓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늙은 자라의 말이 생각나서 북해를 한번 보기로 하고 강을 따라 갔습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인 약()이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넓은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 -

 

식견이 좁은 사람을 일컬어 우물 안 개구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은 식견이 좁은 것과 관련이 매우 많습니다. 알지 못하면 가만히라도 있어야 하는데, 식견이 좁은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줄로 착각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 양 우겨댄다는 겁니다. 이는 단순히 교육수준의 높고 낮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에 마음이 열려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식견이 좁은 사람의 예로 바리새인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공부를 적지 않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율법의 전문가들입니다. 이들의 율법해석과 율법지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모든 관리들도 바리새인들의 율법해석을 따라 일을 처리해야만 그 권위를 인정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식견이 생각보다 높고 크지 못하다는 것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율법의 끝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메시아의 오심과 동시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올바로 해석하고자 노력하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자 노력한 이유도 오실 메시아를 흠없고 티없는 가운데 맞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한다는 것은 오실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율법이 대망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하나님 나라인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는커녕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결국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율법대로 살아낸 이유가 바로 메시아 때문인데, 그 메시아를 손수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으니 이는 손수 하나님 나라를 거부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들은 결국 율법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를 살지 못하고, 그저 율법의 닫힌 세계에만 살았던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살았다면,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했을 때, 즉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오셨을 때 그를 메시아로 알아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식견이 좁았기 때문입니다. 식견이 좁았던 바리새인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보였고, 이는 교만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진리에 대하여 몸과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온전히 드러나는 때입니다. 그 날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정적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확정된 진리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만이 우리의 식견을 넓히는 일이요, 교만해지지 않은 길이요, 구원을 놓치지 않을 유일한 방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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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