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2. 4. 12. 13:53

샬롬은 어떻게 오는가

(출애굽기 17:8-9, 18:1-4, 13-18)

 

1. 르비딤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일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르비딤은 시내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지역이다.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게 될 ‘시내산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절체절명의 사건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covenant)’를 맺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언약을 맺으시지만, 하나님은 시내산 사건에 이르러서야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신다. 언약의 스케일이 족장에서 민족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러 이 언약의 확장은 온 우주로 확대된다. 그러니까, 성경은 언약의 시각에서 보면, 언약이 하나님의 존재의 크기만큼 온 우주로 확대되어 가는 이야기이다. (이는 마치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많은 생각 거리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우리의 존재/생각을 한 곳에만 고정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잠정적이다.)

 

2. 일단 팩트 체크부터 하면 좋을 것 같다. 르비딤이라는 지역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과 모세가 다툰 사건도 여기에서 발생했고, 반석에서 물이 난 사건도 르비딤에서 발생했다. 모세와의 다툼이 끝나자, 이제 아말렉과의 전투가 발생한다. 아말렉과의 전투 장면에서 여호수아의 존재가 처음 등장한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단번에 모세의 후계자로 물망에 오른다. 아말렉과의 전투가 끝난 후, 오랜 시간동안 헤어져 살던 모세의 가족들이 모세를 찾아온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 그리고 배우자 십보라, 또한 그들 사이에서 난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이 온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서 체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시내산에 들어서기 전, 르비딤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3. 우리는 살면서 고통스러운 일을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아 그래, 이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의 삶은 형통할 거야!” 출애굽기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그 지긋지긋한 애굽 땅에서 탈출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홍해를 건넜을 때, 그리고 뒤따라오던 애굽 군대가 홍해 물에 모두 수장되어 죽었을 때, 그래서 더 이상의 위협이 없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흥겨워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

 

4. 그런데 홍해 이야기 이후에 전개되는 불평 이야기에서 보듯이, 그들의 여정은 그들의 생각처럼 형통하거나 쉽지 않았다. 막상 출애굽 하면 모든 게 형통하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출애굽 하여 광야에 들어서 보니 온통 불평거리였다. 물이 없어서 불평, 먹을 게 없어서 불평,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늘어 놓았다. 르비딤에 이르러서는 불평과 원망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 모세와 다투기까지 했다. 모세와의 다툼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기까지 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출 17:2).

 

5. 다른 말로 해서, 희망차게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시내산 등정을 목전에 앞두고 서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하고, 분열될 대로 분열하고, 평화가 사라져버렸다. 한 마디로, 르비딤의 이스라엘에게서는 ‘샬롬(문자적으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샬롬,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출애굽 했는데, 샬롬은 온데간데없고 불평과 원망, 다툼과 불안만 가득했다. 상황이 이쯤되면 공동체는 완전히 와해된 것이고, 출애굽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는 이런 탄식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What are we going to do? 어떡하지?”

 

6. 살면서 우리도 이러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런 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What are we going to do? What am I going to do? 우리 이제 어떡하지? 나 이제 어떡하지?” 샬롬(평화)이 깨지거나 없어지면 우리의 삶은 급격하게 불안해진다. 르비딤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샬롬이 없는 것을 드러나게 확인한 곳도 르비딤이고, 사라진 샬롬을 다시 찾게 되는 곳도 르비딤이기 때문이다. 샬롬 없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전진하기 쉽지 않다.

 

7. 르비딤에서 그들이 맞닥뜨린 위기는 물이 없어서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한데서만 온 게 아니다. 또다른 실제적인 위기가 그들에게 닥쳤는데, 느닷없이 아말렉 족속이 르비딤에 진을 치고 있던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직 군대가 없었다. 출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들이었고, 또한 출애굽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광야로 들어서서 살아남기 급급했던 이들에게 적과 싸울 만한 군대가 조직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아말렉이 쳐들어왔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를 지명해서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 싸우라고 명령한다.

 

8. 우리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에는 깨어진 샬롬을 되찾아줄 중요한 첫번째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 꼭대기에 서서 아말렉과의 전투에 동참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진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고 서서 아말렉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야기이다.

 

9. 모세가 산 꼭대기에서 손에 잡고 있던 ‘하나님의 지팡이’는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낸 바로 그 지팡이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 꼭대기에 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전투에 개입하실 거라는 뜻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이런 저런 전투를 치르느라 고생을 많이 한다. 전투를 치르느라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샬롬을 잃어간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마음을 닫고 숨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일수록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한 일을 기억해야 한다. 즉, 우리는 우리가 하는 전투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허락하고 순종해야 한다. 주님, 두 손을 높이 듭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두 손을 높이 듭니다. 이 전투를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싸워주시옵소서.”

 

10. 이 기도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아말렉과의 전투를 보라. 여호수아가 승리한 이유는 모세가 아론과 훌의 도움에 힘입어 하나님의 지팡이를 계속하여 높이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말렉과의 전투는 이스라엘의 전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투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싸워 이기신 전투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나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라 부른다. 사실, 우리의 예배가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주일이 되었으니까 습관에 좇아 나오는 주일예배가 아니라, 일주일 동안 삶의 전투 속에서 하나님이 싸워주신 덕분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신앙의 고백이 담긴, ‘여호와 닛시’의 예배, 그것이 우리의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11. 아말렉과의 전투는 이스라엘의 분열을 드라마틱 하게 치유해 준다. 르비딤에 도착하여 폭발한 갈등이 치유된다. 자신들이 나가서 싸운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든 덕분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싸워주시니,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삶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어떠한 전투에 나가든,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 “주님, 이 전투를 주님께 맡깁니다.” 아말렉과의 전투가 승리로 끝난 뒤, 이스라엘에게 샬롬이 찾아왔다. 이게 단순한 샬롬이 아니었다. 아말렉 전투는 전화위복이 되어 이스라엘의 내부결속을 가져왔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반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임한다. 하나님께 맡겨드릴 때 임한다.

 

12. 아말렉과의 전투가 끝난 뒤,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모세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오랜 시간 동안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모세 가족의 재회 이야기를 통해서 샬롬의 두번째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모세의 두 아들의 이름에는 왕궁에서 쫓겨난 후의 모세의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첫째 아들 게르솜은 ‘이방에서 나그네 되었다’는 뜻이고, 둘째 아들 엘리에셀은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시라’는 뜻이다.

 

13. 사실, 우리 이민자들의 삶은 모두 이와 다르지 않다. 낯선 이방 땅에 와서 우리는 늘 나그네처럼 산다. 그런데 우리가 이민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찬송을 부르며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한 분 믿고 살아온 인생 아닌가. 나 같은 경우도 한 명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했고, 또 이곳에 부르심을 받고 와서 여러분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가 전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는 이제 어떤 사람들보다도 한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이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여러분은 기적 같은 분들이다.

 

14. 모세와 장인 이드로의 대화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모세는 예를 다해 가족을 맞이하고 장인 이드로와 담소를 나눈다. 18장 8절에 그 담소의 내용이 한 줄로 이렇게 요약되어 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말하매.” 여기에서 우리는 샬롬을 얻게 되는 두 번째 원리를 깨닫게 된다. 바로, ‘신실한 신앙의 고백’이 그것이다.

 

15. 샬롬이 없어진 사람에게는 ‘신실한 신앙의 고백’도 함께 사라진 것을 보게 된다.  누군가 오랜만에 여러분을 찾아왔다고 생각해 보라. 그(들)에게 여러분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모세는 오랜만에 찾아온 장인 이드로에게 ‘불평과 불만’을 늘어 놓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드로에게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신실한 신앙의 고백’을 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신실한 신앙의 고백을 했다는 것은 이어지는 장인 이드로의 반응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출 18:9-11).

 

16.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다. 다른 말로, 이방인 제사장이다. 장인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신실한 신앙 고백을 통해서 이방인 제사장 이드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알았도다!” 이제 장인 이드로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예배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전도가 된 것이다. 샬롬이 없는 사람에게는 ‘신실한 신앙의 고백’도 없다. 그러나, ‘신실한 신앙의 고백’은 우리에게 샬롬을 가져온다. 신실한 신앙의 고백이 있으려면 우선 위에서 살펴본 첫 번째 샬롬의 원리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계속하여 맡겨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보듬어 안으시고, 우리의 입술에 신실한 신앙의 고백을 넣어주신다. 그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의 샬롬을 선물로 받았다는 증거가 된다.

 

17. 르비딤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이야기는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지혜 덕분에 이스라엘 진영을 재정비하고 부족한 법조직과 행정 체계를 새롭게 수립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세 번째 샬롬의 원리를 배우게 된다. 모세는 하루 종일 바빴다. 이스라엘의 모든 송사를 혼자서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서 할 수 없으리라”(출 18:18). 혼자서 처리할 수 없는 일을 혼자서 감당하려니 모세는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장인 이드로는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준다.

 

18.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일처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역경과 어려움이 닥칠 때 스스로, 혼자서 그 일을 헤쳐 나는 것은 역부족이고, 샬롬을 잃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짐을 나누어 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조언을 해준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출 18:21).

 

19. 샬롬을 얻게 되는 세 번째 중요한 원리는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이다. 그런데 장인 이드로가 제시하고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의 조건은 우리가 아는 능력과 사뭇 다르다.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을 학력이나 연봉 같은 것으로 평가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제시하고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과 별로 상관이 없다. 샬롬은 학력이 좋고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과의 사귐에서 오는 게 아니다. 샬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all the people able men who fear God, men of truth, those who hate dishonest gain)’와의 사귐에서 온다.

 

20.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이러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능력은 그 누구보다도 모세 자신이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샬롬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온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함께 진실하고, 함께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로 세워져 나가는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런 공동체인 줄 믿고, 그런 공동체로 더욱더 성장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좋은 사람들의 교회, 능력 있는 사람들의 교회, 세화교회.

 

21. 샬롬은 어떻게 오는가? 샬롬 없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들다. 샬롬이 없으면 삶은 힘겨울 뿐이다.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샬롬은 반드시 필요하다. 샬롬은, 1) 우리의 삶의 전투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내어드릴 때, 2) 신실한 신앙의 고백이 있을 때, 3) 능력 있는 사람(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우리에게 온다. 무엇보다 첫 원리가 가장 중요하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 이 전투를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싸워주시옵소서!” 이것이 두 번째, 세 번째 샬롬의 원리를 견인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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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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