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2011. 2. 14. 11:30

시편 6편
나를 떠나라는 외침

 

시인은 아프다. 질병 때문에 아프고, 원수 때문에 아프다.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아프다. 그것을 시인은 벼가 떨린다라고 표현한다(2).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뼈는 육체적 힘과 건강이 자라는 처소이며, 심지어는 감정의 처소이기도 하다. ‘뼈가 떨린다는 시인의 고백을 통해 그의 건강과 정신이 얼마나 쇠약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극한 상황이고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시인은 죄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린다. 우리는 흔히 죄의 고백하면 잘못한 일을 하나님께 고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틀리는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우선 고대 히브리인들의 생각에 질병은 죄의 결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이 이렇게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죄의 결과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무조건 불합리한 생각이라고 치부하면 안 된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이런 생각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질병이 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신학적 진술이지, 자연과학적 진술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은 도덕적 뉘우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학적 신앙 고백이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외부의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이러한 처절한 참회의 기도는 헛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시인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께 간절하게 호소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매우 법적인 사랑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헤세드(언약적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신실하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함, 즉 당신의 의를 위하여 시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구원해 주신다.

 

시인의 탄원은 이제 구원의 확신으로 바뀐다(8). 현재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시인은 더 이상 낙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헤세드) 안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원수들에게 나를 떠나라고 외친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게서 시인을 떨어뜨릴 수 없다. 이 당당한 신앙의 고백이 원수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외침과 너무도 닮아 있다. 예수는 자신을 시험하는 마귀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쳤고( 4:10), 자신이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방해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외쳤다( 16:23). 이렇게 시험을 이기고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언약이다. 신약성경은 그것을 아가페(사랑)라고 증거한다. 구약의 헤세드(언약적 사랑)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원수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게 한다. “나를 떠나라!”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 낼 수 없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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