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악]

 

평등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 혁명의 3대 가치 중 하나인 평등(egality)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법 앞에서의 평등은 무엇일까? 법은 가치 중립적일까? 법 자체가 평등하지 못하면 법 앞 에서의 평등이라는 평등(egality)는 무슨 가치를 지니는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Venom>을 봤다.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외계 생명체 Venom과 한 몸을 쓰는 주인공은 악의 무리와 맞선다. 아이들은 이 영화가 재밌다는데, 솔직히 나는 무엇이 재밌는지 모르겠다. 정신 사납기만 했다. 나는 마동석 나오는 이터널스가 더 재밌다고 생각해서 물어봤는데, 아이들은 이터널스보다 Venom이 재밌다 한다.

 

Venom에서 악당은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악당은 주인공의 방문 중 그와 다투다 우연히 Venom의 성분을 맛보게 되고, 그 안에서 Venom은 악이 된다. 그리고 다른 곳에 갇혀 있던 자신의 연인을 구하여 둘은 큰 힘을 발휘하며 세상을 휘저어 놓는다.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으로 구성된 악의 세력. 둘은 사랑의 키스를 나누고,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평등과 악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평등이란 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특징이 있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는 언제나 백인이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는 백인이다. 그리고 흑인이나 동양인들은 모두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의 조력자에 불과하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을 망치는 악한 인물 또한 백인이다. 악을 저지르는 인간은 늘 백인이 주인공이다. 또는 백인을 닮은 외계인이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백인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악을 저지르는 악당은 늘 백인이라는 것이다.

 

착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다.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한 일은 힘 있는 자만 저지를 수 있다. 역사에서 백인은 늘 힘 있는 자였다. 역사에서 백인이 저지른 악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에서 여자 흑인 악당이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평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은연 중에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마음 불편해한다. 우리는 은연 중에 마이너리티는 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평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 자체가 차별이고,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평등'하지 않은 지 알 수 있다.

 

백인이 저지르는 악한 일은 참아내면서, 왜 흑인이나 아시아인 또는 장애인, 아니면 성적 소수자가 저지르는 악한 일은 왜 참아내지 못하는가? 우리는 이미 백인들의 스토리텔링 안에서 왜곡된 평등의 개념을 내면화시킨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히어로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악당이 누구인가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백인이 히어로로 등장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재미없다는 심리적 불만족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악당은 늘 백인인데, 악한 일은 마치 백인만 저지를 수 있는 권리인 것처럼, 악에 대한 평등의식 자체가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된 평등은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백인 또는 힘 있는 자만 악한 일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한, 우리는 영원히 평등할 수 없다.

Posted by 장준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