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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이야기2015. 10. 7. 02:34

후배의 죽음

 

아끼던 대학 후배가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 때문에 고생하다 갔다. 뇌종양이 발병한 뒤, 그는 행동하는 것과 말하는 것에 큰 제약을 받았다. 마음 먹은 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마음 먹은 대로 말하지 못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재활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 했지만, 결국 병이 악화되어 생사를 달리하고 말았다.

 

지난 봄에 있었던 연회(Annual Conference) 참석 차 LA에 갔다가 거기서 멀지 않은 Irvine에 살고 있던 후배를 병문안 갔었다. 나는 단순한 병문안이 아닌, 함께 예배 드리고 성만찬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말씀도 열심히 준비해 갔고, 간이 성만찬 기구도 챙겨갔었다. 그리고 함께 정말 이보다 더 간절한 예배가 없을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 드리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었다.

 

이 친구를 알고 있는 대학 동기, 선후배 중 세상을 떠나기 전 이 친구와 함께 예배 드리며 성만찬을 나눈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듯 하다. 생명에 큰 위협을 느끼거나, 생명이 저물어 가는 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언제나 큰 축복이다. 나는 목사로서, 이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예배를 집전하고, 함께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그리고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떼고. 그 후,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도 나누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나에게는 그 친구의 간절한 소망인 생명을 소생케 하는 능력이 없었다. 생명의 소생이 절실한 상황에서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부끄러움과 절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소생이 절실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너무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순간,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를 몸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넘어선 신적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참 인간인 예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넘어서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내려 놓는 케노시스의 영성을 보여주었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인간이 되고자 하는 신’. 결국 세상을 구원한 것은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한 신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병마 앞에 결국 생명을 빼앗긴 후배를 보며, 그가 경험한 지극히 인간적인케노시스를 보며, 조금이라도 신이 되고자 했던 욕망은 모두 부끄러운 일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우리는 모두 그가 간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는 우리가 가지 않게 될 길로 떠난 외로운 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게 될 길은 먼저 떠난 선구자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우리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 우리도 곧 그처럼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를 저 인생의 바닥에서 체험하게 될 테니.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애써 멈추지는 말자. 눈물은 그가 우리의 가슴에 남긴 사랑의 흔적이니.

 

사랑하는 세정아, 이제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은그곳에서 편히 쉬렴. 거기서 우리의 평안도 빌어주렴. 우리 곧 다시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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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