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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09 아들의 가족 그림
풍경과 이야기2015. 10. 9. 23:20

나는 어려서부터 결혼하면 아들을 낳고 싶었다. 그런 간절한 소망이 그분께 '심하게' 상달되었는지,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다. 사실, 연애할 때 우리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키우기로 했었다. 그래서 연애할 때 애들 이름까지 다 지어놓았었다. 아들은 건유, 딸은 유은. 장건유, 장유은. 그런데, 막상 낳고 보니 우리의 소원대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지 못하고, 아들 하나, 또 아들 하나, 그래서 아들 둘을 낳았다.

 

내가 아들을 낳고 싶었던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인 나를 너무 사랑해 주셔서, 나도 아들을 낳아 아버지처럼 아들을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돈독한 가정은 드물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억압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애증의 사이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버지와 나 사이는 그렇지 않았다. 이건 내게 주어진 큰 축복인 것 같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아이들을 보면, 대개 아버지와 사이가 소원한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서 그랬는지, 사춘기를 건전하게 넘겼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차 몰래 몰고 나가 친구들하고 드라이브 하고 다니다 경찰(전경)의 불심검문에 걸려 경찰서(파출소)에 한 번 끌려 갔던 거 빼놓고는, 사고친 적이 없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와 사우나를 함께 가는 것이 내 삶의 낙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70% 정도는 아버지와 사우나를 갔다. 아버지와 사우나를 마친 뒤, 탕수육밥이나 갈비탕 한 그릇 먹고 들어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탕수육이나 갈비탕을 먹을 때면 그때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얼마 전, 큰 아들이 학교에서 가족 그림을 그려왔다. 여덟 살 먹은 큰 아들의 동심이 그려낸 가족 그림은 나의 미소를 자아냈다. 아들의 마음 속에 아버지가 어떠한 존재인지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들과 매일 재미 있게 놀아주는 아버지, 자기들에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언제나 인자하게 대해 주는 아버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함께 해주는 아버지, 자기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주는 아버지, 하루에도 몇 번씩 뽀뽀해주는 아버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하는 우리 아들, 이쁜 우리 아들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아버지, 매일 같이 품에 끌어 안고 기도해 주는 아버지, 잘못했을 때 호되게 혼 내지만 이내 가슴에 끌어 안고 위로해 주는 아버지,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수퍼맨처럼 해결해 주는 아버지, 무엇보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아버지 아들인게 너무 고마워라며 미소를 건네는 아버지.

 

아들은 바로 그 미소를 아버지의 가슴에 그려 넣었다.

 

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집사람에게 늘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이렇게 천년만년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뿔뿔이 헤어질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금 이순간을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 향유하는 것뿐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은 복된 인생이다. 우리 아버지의 인생이 복된 이유는 아버지가 내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소망은 내가 아들의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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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