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I2011. 12. 21. 01:14

골로새서

5.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라 (1:21-23)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있은 뒤, 골로새 교회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말씀이다. 위에서 설명한 그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이 바로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골로새 교회에 이루졌다는 선포인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이 내 삶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본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내 삶에서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것이 관건이다. 이게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화해의 사역을 믿고 안 믿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믿는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난 일이 되는 것이 아니요, 내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안 일어난 일이 되지 않는다. 나의 믿음과 상관 없이 그리스도의 사역은 진리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그 진리가 내 삶에 효력을 나타내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나의 응답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일컬어 존 웨슬리는 응답하는 은총(Responsible Grace)’라고 말한다. 이는 잘못 생각하면 구원의 완성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인간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응답하는 은총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응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하나님께부터 오는 것이다. 은총에는 응답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은총이란 책임 있는 것이고 무게가 있는 것이다.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가벼운 사항이 아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 만물은 그 은총에 필히 응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사람마다 그 응답의 속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응답의 속도에 차이가 날 뿐,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응답의 속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에 더디게 응답한다고 한들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정죄하거나 안절부절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나의 응답이 다른 사람보다 빨랐다면 그것에 합당한 감사와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면 그뿐이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나의 응답이 빨랐다고 해서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잘 난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는 것도 아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을 그렇게 대하지 않으신다. 모두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중요하지 내가 보고 판단하는 나의 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남보다 먼저 은총에 응답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특권인 양 은총에 아직도 응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대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 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된 자나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 위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는일뿐이다.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일회적인 삶이 아니라, 지속적인 삶을 의미한다. 복음을 들었으니, 그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창조의 사역이 완성될 때까지 우리는 복음을 붙들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하루는 복음 안에서 살고 하루는 복음 밖에서 살고 그러면 안 된다. 늘 항상 끝까지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 ‘굳게 선다는 말은 어떤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우리는 외부의 유혹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복음 안에서 잘 살아가다가도 주변 환경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 흔들린다. 그러나 복음의 터 위에 굳게 선 믿음의 사람은 주변의 어떠한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좌절하거나 절망하면 그건 이미 죽음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이 절망의 반대가 소망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절망하면 믿음에 머무를 수 없다. 절망하면 흔들린다. 흔들리면 흔들림을 따라 인생이 표류하게 되어 있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셨다. 우주의 중심이요, 우주의 창조자시요, 우주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화해했는데 무엇이 두려우리요? 죽음조차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 마지막 원수인 죽음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멸망시키셨기 때문이다. 죽음을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 붙잡고 살면 된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