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1. 11. 10. 23:29

화이부실(華而不實): 사람이나 사물이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알맹이가 없음을 비유한 말

 

춘추시기, ()나라 대신 양처보(陽處父)는 위()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나라 영성의 한 집에 묵게 되었습니다. 집 주인 영은 양처보의 당당한 모습과 비범한 행동을 보고 그와 함께 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양처보의 동의를 얻은 후, 영은 아내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를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영은 온() 땅에 이르자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영의 아내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영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만 사납고 강한 성질로만 처세하고,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속으로는 덕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집중시키고 있소(且華而不實, 怨之所聚也). 이러한 사람을 따른다면 몸을 안전하게 보존하지도 못하고 이익은커녕, 도리어 그의 재난에 관련될 것을 두려워했소. 그래서 나는 그를 떠나 돌아 온 것이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우리 눈이라는 것이 믿을 게 못됩니다. 눈이 전해주는 정보만 따라갔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죠. 그러나 사람은 일반적으로 눈이 즐거워야 마음이 즐겁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이 세상은 모두 눈이 즐거워하는 것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혈안입니다. TV와 인터넷 등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그 현상은 더 두드러졌습니다. 눈이 즐겁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속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TV이나 인터넷 대중매체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잘 디자인된 것들만 나옵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즉 눈이 즐거운 아름다움이 참된 아름다움일까요? 물론 거기에서 자유로운 현대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눈이 즐거우면 마음이 즐겁고, 눈 따라 마음도 가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움이 정말 그런 거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절대로 현대인에게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2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미화(美化) 되긴 했지만, 십자가는 결코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눈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사과가 아닙니다. 우리를 유혹해서 타락하게 만드는 거짓 조형물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의 외침이 서린 진리의 표상입니다.

 

십자가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결코 이 세상에서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겉모양보다는 알맹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겉모양에 신경 쓰고 거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보다는 알맹이를 영글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합니다. 얼굴이 고운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시고, 마음이 고운 사람이 되십시오. 얼굴은 아무리 고와도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으나, 마음이 고우면 흐르는 시간이 벗이 됩니다. 이것을 요즘 시대의 미의 원리 또는 성형술의 보편성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마십시오. 진리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맘몬신(돈신), 즉 두 주인을 한꺼번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선상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된 겁니다. 십자가의 순리를 따르는 아름다운 사람이 됩시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용지묘(運用之妙)  (0) 2011.11.23
지상담병(紙上談兵)  (0) 2011.11.16
노마십가(駑馬十駕)  (0) 2011.10.10
양포지구(楊布之狗)  (0) 2011.09.23
금슬상화(琴瑟相和)  (0) 2011.09.15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