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가면'을 읽고]

 

저자(비벌리 가벤타)는 '로마서에 가면' 다음 네 가지를 하라고 알려준다. 1) 지평을 살펴보세요, 2) 아브라함을 떠올려 보세요,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요, 4) 서로를 받아들이세요.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자신의 수업 때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로마서 과제를 못하겠다고 포기해 버린 한 학생처럼 로마서를 읽으며 로마서가 가진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자의 바람은 충분히 성공적인 것 같다. 로마서에 가면 위의 네 가지 요점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하라는 저자의 말과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로마서에 가서 길을 잃지 않게 끔 충분히 이끌어 주는 네비게이션과 같다.

 

무엇보다, 내용이 논쟁적이지 않아서 좋다. 물론 저자의 입장과 해석이 깊이 들어간 책이지만 로마서에 대한 논쟁을 이끌지 않고 자신의 입장과 해석을 담담한 필체로 설명해 나가는 것이 꽤 설득력 있다. 저자는 겸손하게 로마서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가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겸손한 주장에 대하여 귀 기울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

 

이 책은 내가 평소에 기독교 복음에 대하여(또는 로마서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잘 해소해 주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 때문에 한국 기독교가 가진 구원의 개인주의화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기독교의 '죄' 개념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라든지, 반대유대주의라든지, 행위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의 문제 등, 현재 교회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어색하고 잘못된 신학적 논의들에 대해서 좀 더 정교한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백미는 3장과 4장이다. 3장에서는 윤리와 예배를 하나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예배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환기시킬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예배를 그만 두는 것은 왜곡된 수많은 행동들의 원인"(163쪽)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신학적 분석은 이 땅의 교회들이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도전을 안겨준다.

 

4장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은 그대로 옮겨적는 게 좋을 듯싶다.

 

[바울은 12장의 문맥에서도 이러한 이미지를 토대로 몇 가지 작업을 수행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로부터, 우리가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개념을 추론해냅니다. 서로 지체가 된다는 것은 곧 빠져나갈 수 없는 관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데 모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개념은 주요 서구 세계가 가진 개인에 대한 숭배 ㅡ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상상하게 만듭니다 ㅡ 와 공공연히 출동합니다.

긍정의 측면에서 보면, 바울은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키는 도중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영적 선물들(은사들)을 통해 전체에 기여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195-196쪽)

 

개인주의 사회, 세속사회, 자본주의 사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로마서가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위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에 대한 숭배', 즉 개인의 우상화가 이루어진 사회이다. 개인에 대한 숭배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모든 가치의 최종 결정자이고, 자유는 개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개념이고, 세속사회는 신조차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건들 수 없다는, 즉 사적인 영역에서 신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본(돈)이 가능하게 만든다.

 

흔히 교회를 공동체(community)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교회를 담임해 보면 교회는 공동체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교회는 '믿기로 결단한 개인들의 집합체'로 이해되고 운영될 때가 많다. 위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교회의 구성원은 서로 책임지지 않는다. 지체라는 개념이 없다. 자신의 취향에 안 맞거나 기분이 상하면 교회(공동체/지체)를 빠져나간다. 그러한 행위를 막을 수 없다. 교회는 이미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주의 사회, 세속사회, 자본주의 사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자발적 모임(은혜로 부름을 받은 모임이 아니라)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것을 래디컬하게 적용하는 일은 언제나 큰 도전이다.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그토록 많이 하지만, 정작 성경을 정직하게, 합리적으로, 그리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 읽는 일에는 늘 실패하는 한다. 성경을 정직하게 읽지 않으니, 교회가 바르게 세워질 수 없을 뿐더러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고 게토화되어 간다.

 

저자는 로마서에 가서 충분히 머물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로마서에 가서 충분히 머물 수 있을까? 충분히 머문다는 것은 구석구석 들여다 보며 그것이 구성하고 있는 전체의 의미를 충분히 묵상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로마서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모습에 비춰본 우리의 교회, 그리고 나 자신, 그리스도인들의 왜곡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충격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을 읽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로마서에 가면, 우주적 지평을 생각해 보고, 바울이 아브라함을 복음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고, 윤리와 예배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될 때, 우리는 충격을 넘어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세상, 하나님 나라로 전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 전문가, 저자의 조언대로, 로마서에 가면,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다.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기 원하시는 것처럼, "나의 몸을 헌금함에 던지는" 신앙의 전회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한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