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2011. 1. 20. 09:24

시편 4 - 평안히 눕고 자는 믿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인은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 요즘 사람들이 흔하게 겪는 병 중 공황증라는 것이 있다. 근거 없는 불안감이나 심리적인 두려움으로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정신장애이다. 이 병의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이 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공황증에 걸리면 평안히 눕고 잘 수 없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스트레스 또한 참기 쉽지 않다. 결국 스트레스가 공황증을 낳고, 공황증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시편 4편의 시인도 정황상 공황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인생들로 표현되고 있고 대적자들로 인해서 시인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이로 인해 시인은 곤란한 상황(distress)에 처해 있다(1). 이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린다. 공황증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기도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기도라는 말보다 울부짖음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기도가 꼭 형식을 갖추어야 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절박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외마디 비명도 하나님 앞에서는 기도가 될 수 있다. 시인은 지금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시인은 기도 중에 대적자들인 인생들에게 그 어떠한 욕설이나 저주는 퍼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근거해서 그들에게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육신은 연약하기 때문에 쉽게 망가진다. 죄와는 상관 없이 우리의 육신은 자주 아프다. 또한 죄의 유혹에 이끌려 죄를 쉽게 지기도 한다. 흙으로 되돌아 가야 할 먼지 같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대적자들에게 시인은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말과 행동을 삼가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신뢰하라는 권고를 한다.

 

5절에서 표현되고 있는 의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말한다. 내 마음대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말한다. 제사(예배)를 드릴 때 내 마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흔히 예배 후에 자기의 마음이 기쁘고 흡족하면 은혜 받았다라고 말하지만, 예배를 통해서 내가 은혜 받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흡족하시고 기쁘신 것이 중요하다.

 

시인이 갑작스럽게 제사를 운운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하여 참된 회개와 참된 신뢰를 보이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선 사람은 결코 누구를 해하려 들지 않는다. 시인의 대적자들이 하나님께 의의 제사를 드릴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결코 더 이상 대적자들이 아니라 친구일 것이다. 결국 이는 시인이 원수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는 충고이고 권고인 셈이다.

 

하나님께 대한 참된 회개와 신뢰는 분명 기쁨을 불러 일으킨다. ‘곡식과 포도주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오는 기쁨보다 더한 기쁨이 온다. 기쁨의 근원은 곡식과 포도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생처럼 먼지와 같이 사라져 버릴 곡식과 포도주가 어떻게 기쁨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기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기쁨이, 하나님에게 근거를 둔 기쁨이 시인을 평안히 눕고 자게 한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공황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대한 참된 회개와 신뢰는 우리를 평안히 눕고 자게 하는 능력이 있음에는 틀림없다.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8).


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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