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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9 제로(nothing)로 놓기
  2. 2016.01.09 케노시스의 일상화 2

제로(nothing)로 놓기

 

나이 들어가며 맛있는 게 없다. 음식 자체가 맛있는 음식은 없고, 그저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 그래서 요즘엔 무엇이든지 맛있게 먹으려고 먼저 속을 비운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때는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뜻밖의 무엇인가가 주어졌을 때이다. 특히, 사람에게 상처 받지 않고, 그 사람으로 인해 기쁘고 감사하려면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로 나의 마음을 비워내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인생에서는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원래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원래 벌거벗고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물건이든, 기억이든, 사랑이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

 

모든 것을 제로(nothing)로 놓기, 이것은 인생의 가장 뛰어난 기술(art)이다.


Posted by 장준식

케노시스의 일상화

 

미국 시골에서 목회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보니 십자가의 고난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조금은 알겠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시몬느 베이유가 신비주의자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고난" "불행"으로 가득 찼지만 거기에서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이 별볼일 없고 초라해지는 것을 못 견뎌 한다. 그런데 예수는 일반 인간이 그토록 혐오하는 "케노시스"의 모습을 자신의 삶에 짊어졌다. 그 당시 십자가에서 죽는 것만큼 별볼일 없고 초라한 인생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 길을 걸어갔다.

 

삶의 자리는 참으로 수렁과도 같다. 아무리 빠져나오려 해도 안 된다. 빠져나오려고 힘 쓸수록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감각은 마비되고 어둠은 깊어지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는 것"은 고난의 향유가 아니라 케노시스의 일상화이다. 잠시 고난적인 상황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는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다. , 그는 십자가를 짊어지러 온 것이 아니라 불의하고 폭력적이고 권세를 잡은 자들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래서 그에겐 자유가 있었다.

 

인생이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모두 ''이라는 십자가를 수동적으로 짊어졌다. 살면서 우리는 질병이라는 폭력, 늙어감이라는 폭력, 죽음이라는 폭력에 의해 고통의 자리에 들어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성실하게 마주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질병과 늙어감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는 케노시스의 일상화를 이루는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