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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07 도전과 응전 1
바이블 오디세이 I2017. 9. 7. 07:49

도전과 응전

(본문: 1:6-14, 2:1-4)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난리가 났다. 북한이 제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본다. 1994년 클린턴 정부 때, 북한 선제공격 시나리오가 북한에 급히 날아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멈춰졌지만, 그때만해도 북한의 핵 무기는 초기 실험단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이제는 최악의 위기까지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이 만난, 최고의 도전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도전과 응전이다. 이 말은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이다. 토인비 - 그는 문명을 발생·성장·쇠퇴·해체 과정을 거치는 유기체로 파악하고, 이러한 문명이도전에 대한응전으로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이 방대한 저작에서 그는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다수의 문명들을 비교·분석하는 데 환경보다는 주체적 대응을 중시했다(김호기, 세상을 흔든 사상 70년, 경향신문). 문명의 발생에서 환경이 중요하냐, 주체적 대응이 중요하냐는 지금까지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사항이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있다. “맹모삼천지교” – 맹자의 엄마가 맹자를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기 위하여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성어다. (묘지 시장 서당) 환경도 중요하고, 주체적 대응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도전이 다가왔을 때 그에 대하여 어떻게 응전(response)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교회도 발생, 성장, 쇠퇴, 해체의 과정을 거치는 유기체, 그러는 사이에 도전에 응전한 새로운 교회가 생겨난다. 우리 교회에 다가왔던 도전들에 대하여 우리는 지혜롭게 잘 응전하면서 새로워진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다.

 

오늘 말씀은 초대교회에 다가온 도전을 그들이 어떻게 응전하여 극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초대교회의 큰 도전, 주님이 승천하셨다. 승천하셨다는 것은 주님이 하늘로 들려 올려지셨다는 뜻이지만, 실제적인 의미는 주님이 자신들 곁에 더 이상 있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말 큰 도전이다. 하나님 같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자식들에게 다가온 도전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큰 도전이었다.

 

이들은 이 큰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주님의 말씀대로 함께 모여 기도하며 성령의 간구를 통해서 극복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하면, 눈에 보이는 주님은 안 계시지만, 성령을 통하여 주님은 그들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

 

초대교회는 자신들에게 다가온 도전에 적절하게 응전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간다.

1) 가룟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 선출 - 뭔가 잘못했을 때, 죄라는 도전이 왔을 때, 회개라는 응전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러질 못했다. 12명의 사도 중 한 명이 빠진 도전을 초대교회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한다.

2) 경제적 어려움이 왔을 때, 나눔이라는 응전을 통해서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 (물건을 통용했다.)

 

초대교회가 도전이 올 때 마다 어떻게 응전했는지 아는 일은 우리 인생의 도전을 극복하는 데 굉장한 영감을 준다. 그들은 도전이 왔을 때마다, 이렇게 했다. 모두 함께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에 잡혀 갔을 때, 초대교회에는 또다른 엄청난 도전이 왔다. 그때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 함께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신앙의 사유화이다. 신앙이 사적인 영역으로 전락한 데는 경제사회적 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때문에 생긴 일이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시장경제체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말하는데,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큰 요점은 사유재산의 강화이다. 개개인이 원하는 무엇이든 시장에서 구입하여 자기의 사적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 있는 우리들은 돈이 없어서 그렇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신앙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쳐, 신앙도 사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굉장히 크다.

 

그렇다 보니, 삶의 어떠한 문제가 생겨서 도전이 올 때, 그 문제를 사적인 신앙의 영역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신앙의 역량으로 도전에 대하여 응전하려고 한다. 그러한 요소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허무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된다. 교회 와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지만, 도전에 응전이 사적인 영역에만 머문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 필요에 의해서 찾은 종교시설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인은 삶에 도전이 발생했을 때, 성령의 간구하심을 통해서 응전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의 역사를 결코 개인이 사유재산 갖듯, 백화점에서 물건 사듯 그렇게 받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는 함께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예배할 때, 기도할 때’, 교회 공동체 위에 내리는 것이다. 시장 경제 체제에 길들여진 현대 기독교인들은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사적인 신앙의 영역으로 떨어뜨리는 것, 이것이 현대 기독교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에 올바르게 응전해야 한다. “모두 함께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들의 삶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도전들을 여러분의 개인의 신앙의 역량으로만 해결하려 들지 말라. 도전이 다가올 때, 교회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라. 도대체 여러분에게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교우들은 어떤 의미인가? 같은 종교시설을 쓰는 타인인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된 지체인가?

 

교회에서 함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베스킨라빈스 31’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배는 골라서 먹는 상품이 아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는 공동체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다. 교회 공동체의 예배에 모두 함께 모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역사를 통해 우리들 가운데 보내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우리의 삶에 다가온 도전들에 대하여 올바르게 응전하며 새로운 역사, 새로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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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