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22. 11. 27. 09:02

가지나무

 

가지나무 삶은 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발에 든 겨울 동상 낫는다 하여

텃밭에서 가지나무 꺾어다가

냄비에 물 가득 붓고 삶는다

 

아들이 겨울마다 동상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운 엄마는

가스 불 아끼지 않고

사골 우려내듯 가지나무를 삶는다

 

얼굴 비치는 스덴 대야에

한 가득 가지나무 삶은 물을 쏟아 붓고

엄마는 입술에 힘을 주며

무거운 대야를 들어 아들 발 밑에 내려놓는다

 

가지나무 또 삶고 있으니

걱정 말고 발 푹 담고 있으라고

한 삼십 분은 담그고 있어야 한다며

엄마는 아들을 의자에서 꼼짝 못하게 한다

 

가지나무 우려낸 물이 무슨 효험이 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겨울마다 손발이 차가운 것은 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

왜 하필 자기를 닮아 손발이 차가워 고생하냐며

뜨거운 물을 몇 번이나 대야에 실어 나르던 엄마

 

뜨거운 물이 우려낸 것은 가지나무가 아니라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

그 사랑 때문에 나는 손발이 차가워도

겨울을 따스하게 보냈다

손발이 차가워도

마음이 따스하면 겨울이 꼼짝 못하는 법

 

겨울 바람이 차가워 동상 들면

가지나무를 삶지 않아도

엄마를 떠올리면 손발이 저절로 따스해진다

엄마의 사랑은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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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