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이며 선물인]

 

정현종 시인의 시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갈증이며 샘물인'이다. 물론 그것도 내가 말하려는 것에 대한 은유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성경의 언어를 쓰자면, 샘물보다 선물이 좋은 은유 같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교를 알아가면 갈수록, 부족한 나의 존재만 드러난다. 존재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내 존재가 너무 부족해서 목마르다.

 

공부도 하고, 실제 목회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해 보기도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목회를 하면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나의 부족함', 갈증뿐이다.

 

이 갈증을 내가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갈증을 채우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뿐인 듯싶다. 그래서 갈증 안에 있는 존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은총이다. 삶은 선물이다.

 

로완 윌리엄의 이 말은 사실이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되새겨야 할 것은 교회는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바울을 읽다. 130).

 

정말 그런 것같다. 교회는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회는 가능하다. 교회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성취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그저 참여할 뿐이다. 우리가 무슨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할 뿐이다.

 

갈증의 존재, 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선물로만 우리는 갈증을 채울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그냥 선물이다. 나는 시방, 우물가의 그 사람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