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11. 26. 03:44

개과천선(改過遷善): 지난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나라 혜제 때 양흠 지방에 주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수 벼슬을 한 주처의 아버지 주방은 주처의 나이 열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없어져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힘이 천하장사였던 주처는 걸핏하면 남을 두들겨 패는 포악한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처는 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고쳐서 새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그의 결심을 아무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처는 마을 사람들에게어떻게 하면 마을 사람들이 평안하겠냐고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산의 호랑이, 장교(長橋)의 교룡(蛟龍)과 더불어 주처를 삼해(三害,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세 가지 존재)라고 여겼는데, 삼해가 모두 없어지면 평안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눈엣가시 같은 주처가 호랑이와 교룡에게 죽기를 바라고 이런 제안을 한 것입니다. 주처는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호랑이와 교룡을 죽이고 마을로 돌아왔으나 아무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마을을 떠났고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게 되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면(改過遷善)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주처는 이에 용기를 얻어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대학자가 되었습니다. - 진서(晉書) 본전(本傳) –

 

성경의 인물 중 누구니 누구니 해도 개과천선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 사도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 개과천선 한 인물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베드로는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그를 일컬어 개과천선 한 인물이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황이 다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예수 믿는 자에게 해악을 엄청나게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 사람을 개과천선 이전에는 사울이라고 부르고 개과천선 이후에는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사울은 지극히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이름 뜻에서도 나타나듯이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자신의 행동이 해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 열성분자였던 그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서 정의로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남에게 해악을 끼칠 때는 이러한 현상이 지배적입니다. 그것이 남에게 해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어떠한 명분에 의해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겁니다.

 

자칭 정의로운 일을 수행하던 사울은 어느날 정의를 집행하러 다메색으로 가던 도중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님을 빛의 형태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상당히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낯설기 보다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황홀한 경험 때문에 사울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의 지시대로 한 그리스도인의 집(아나니아)에 가서 그의 기도를 받은 후에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개과천선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경험하고 눈이 멀었다 떴을 때(기도하고 떴을 때) 같은 눈이지만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바로 그 상태. 자칭 정의를 수행하던 지극히 큰 자 사울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개과천선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정의를 수행하는 지극히 작은 자 사울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된 것처럼 우쭐해져서 자신을 큰 존재로 여기지만, 그리스도께서 옳다고 인정하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을 낮출 줄 알게 되어 지극히 작은 자로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게 됩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개과천선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개과천선한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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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