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0. 1. 31. 04:10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디아코노스(일꾼)

(골로새서 1:24-2:5)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은 참 쉽지 않다. 초대교회, 바울이 활동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약성경 전반에 흐르는, 교회를 세워 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이 곳곳에 배어 있다. 본문도 그러한 정황을 담고 있다. 이 문장이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2:4).

 

골로새 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는거짓 교사가 활동했다는 뜻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다음 말씀이 담고 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2:3). 그 무엇인가가 지혜와 지식을 담고 있다고 주장을 했고, 그에 대하여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지혜와 지식을 담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이후에 지난 2천년 간 계속되고 있는 싸움이다. 무엇이 지혜와 지식을 담고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지혜와 지식은 물론 구원을 가져다 주는,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혜와 지식일 것이다. ‘무엇이 구원인가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까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아우성은 구원에 대한 아우성이다. 구원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이 구원이라고 외치는 형국이다. 존재하는 모든 지식과 지혜, 그리고 서비스는 모두 자신이 구원을 줄 수 있으니, 자신을 선택하라고 손짓한다. 사람들은 구원을 주겠다고 손짓하는 것들에 마음을 준다. 얼마간 성공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궁극적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시다!”를 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주고, 그분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른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구원자들과 경쟁한다. 우리는 그 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분이라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 맞다. 그것을 비밀(미스테리온)’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것은 비밀이라기보다는 신비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비밀과 신비는 명백하게 다르다. 비밀은 알고 나면 싱겁지만, 신비는 알면 알수록 놀랍고 신비롭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다 드러나면 그만이지만, 신비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 드러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비 안으로 계속 이끌려 들어가며, 그 안에서 놀라운 생명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분이다.

 

바울은 말한다. “그 신비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었지만, 이제 성도들에게 드러났다”(1:26). 비밀은 사람들에게 드러나면 가십(gossip)거리가 되거나 싱거운 일이 되어버리지만, 신비는 그 모습을 드러내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거나,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비는 성도들’, 즉 믿는 자들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믿음이 없이는 신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을 알아볼 수 없다. 바로 이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냥 비밀(secret)’이었다면, 사역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베일을 벗겨서 보여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신비(mystery)’이기 때문에 사역이 어려운 것이다. “그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쳐야하기 때문이다(1:28). 그래야 그리스도의 신비를 조금씩 알아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져 갈 수 있다. 이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나 혼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협업(working together)이 필요하다. 바울은 말한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9). 교회 사역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된다. 적어도,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즉 성령과 협업이 필요하다. 사역(ministry)은 태생적으로 공동체적이다.


성령이 혼자서 하실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성령은 사역(그리스도를 전하는 일, 감추어져 있었지만 이제 드러난 신비를 알리는 일)을 위해 일꾼을 필요로 하신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1:25).

 

여기서, 일꾼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디아코노스이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관하여 표현할 때,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하나는 둘로스()’이라는 말과 다른 하나는 디아코노스(일꾼)’이라는 말이다. ‘둘로스()’은 주인에게 완전히 종속된 존재를 말한다. 매우 강력한 표현이다. 그 무엇의 종(노예)이 아니라,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수의 노예라고 표현한다. 노예제도가 편만했던 로마제국 시대에 예수의 노예라는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주 보편적인 언어로,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아코노스(일꾼)’둘로스()’와 매우 다른 표현이다. ‘디아코노스(일꾼)’라는 말은 책임을 맡아 자원하는 심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강렬한 마음이 담긴 표현이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둘로스, (노예)’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하여는 디아코노스(일꾼)’이라고 말한다.

 

노예라고 하는 말이 이제는 보편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바울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오래고, 노예로 살아보지 않아서 그렇다. 그리고, 그 어감이 부정적이라, 현대인들에게는 별로 좋은 표현이 아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표현했을 때, 부정적인 의미를 풍기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이 그리스도에게 맡겨져 있음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신앙고백이고, 여전히 우리가 동일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생명은 도대체 무엇에 맡겨져 있는가? Insurance?

 

바울의 이 고백은 가슴 뛰는 고백이다. 감정적인 고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달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하는 고백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여기서 채우노라채우다라는 뜻의 동사 플레로오와 접두사 안타나가 연결된 단어이다. 접두사를 안티로 쓰면 대신하여라는 뜻이 되고, ‘아나로 쓰면 다시 한 번/재차의 뜻이 된다. 그러므로, ‘채우노라는 고난을 대신 감당하겠다는 의지와,

고난을 여러 번이라도(몇 번이라도) 감당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내는 동사이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노예(둘로스)’, 그리스도의 일꾼(디아코노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당시 노예는 주인을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거나 죽었다. 그리고, 일꾼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삶이 아니라, ‘책임을 맡아 자원하는 심정으로어떠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골로새서의 말씀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이끈다.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자연스럽게 이러한 고백이 나왔다.

나도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로 결단했다. 그래서 나를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모두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의지해서, 힘을 다하여 수고하고 싶다.

 

이렇게 결단한 동역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과 함께 사역하며 생명을 주님과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내어주다 죽고 싶다.

 

영광의 소망이신 주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아멘.”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종(둘로스)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디아코노스(일꾼)”이 되어,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 모두 서로 합력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세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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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