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야 할 때

 

누군가 길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 곳에 여행 갔다 돌아올 때, 정말로 희한한 것은 길을 따라온 것뿐인데, 집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길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것이다. 그 길만 따라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길이 안전하고 평안하길 바란다. 길을 따라 가다가 안전하지 않아 보이거나 울퉁불퉁하면 긴장하거나 불평을 늘어 놓는다.

 

우리는 대개 누군가 이미 닦아 놓은 길, 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다닌다. 길이 놓여 있지 않거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은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히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놓거나, 아니면 혼자서 그 길을 걸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보스턴에서 죽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 먼저 길은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 정현종 번역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시이다. 이 시를 통해 어떤 이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한다고 말한다. 명백한 오독이다. 이 시의 주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가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에 놓여 있던 두 갈래의 길 중, 한 길을 택했더라도, 나중에, 선택하지 않은 길을 생각하며 후회하게 되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시이다. 그렇다. 우리는 후회 없이 살 수 없다.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길을 선택해서 걸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보면 후회가 몰려오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길을 가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지점에 주의(Caution)’ 간판이 놓여 있다. 길이 울퉁불퉁해서 빠르게 지나면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방법은 천천히, 느리게 지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속도를 줄인다.

 

그렇다. 인생의 길이 울퉁불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가는 것이다. 울퉁불퉁 한데도 평소처럼 빠르게 지나다가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없었던 일을 돌아오며 후회하기 보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일을 돌아보며 더 큰 후회를 한다. 느리게 가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갈 때는 무조건 느리게 가야 한다. 그래야 후회 많은 인생의 길을 돌아보며 지혜로웠던 자기 자신을 대견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