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21. 4. 14. 08:37

[마음 아팠던 성금요일의 아침 풍경]

 

고난주간/부활절 임에도 모여서 마땅히 불러야할 찬양을 못 부르고 마땅히 받아야 할 말씀을 받지 못하는 이 때에, 나는 고난주간 내내 각 가정 심방을 돌고 있다. 사랑으로 환대해주는 교회 식구들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리며, 고난주간에 불러야 할 찬송과 나누어야 할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한다.

 

나는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과 교회에서 사순절 기간 동안 프로젝트로 진행한 Homeless Care Bag(우리는 이것을 Blessing Bag이라 부른다/사진)을 가지고가, 예배 드린 후 나누어드리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실리콘밸리 지역은 홈리스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 세계를 선도하는 초일류 기업이 즐비한 곳이고, 세상에서 가장 막대한 부를 창출해내는 곳 중 하나이지만, 그 이면에는 홈리스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아주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길거리를 지나가다 홈리스를 만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생필품들을 조금씩 담은 "care bag"을 만들어 교회 식구들에게 나누어주고, 홈리스를 돕는 일에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

오늘 아침, 000 권사님 댁 심방을 하러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는데, 아파트 직원 몇이 나와서 한 여성 홈리스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철문 안의 아파트 단지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단지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는 홈리스를 직원들은 내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여성 홈리스(아마도 정신이 반쯤 나가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같은)는 직원들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단지 바깥으로 쫓겨나가고 있었다.

 

이미 철문 밖으로 쫓겨나가 그 얼굴과 말에 억울함과 비참함이 섞여 나오고 있을 때, 나는 가지고 다니는 홈리스 캐어 백을 하나 꺼내들고 철문 사이로 그것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캐어백을 받아든 그녀는 "이것을 정말로 자신한테 주는 거냐"고 물으며, 백 안에 들은 물건들을 살피며 연발 "Thank you"를 외쳤다. 캐어백을 품에 안고 자리를 떠나면서 소리내어 엉엉 우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성금요일 아침, 슬픈 풍경을 바라보며, 가슴이 너무 아팠다.

 

성금요일 아침, 이 슬픈 풍경을 돌아보며 촛불을 켜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같은 하늘 아래 있는데, 왜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 지옥으로 가셔서 그곳의 영혼들까지도 보듬어 안으신 주님께서, 이 지옥 같은 세상에 얼른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그 날을 다시 한 번 소망하며 기다려본다.

나는 손이 짧아 그녀에게 캐어백 밖에는 전달해주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녀를 구원해 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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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