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높이라 Raise your voice]

 

미국 뉴스는 연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용의자 전직 경찰관 데릭 쇼빈의 유죄 판결에 대한 논평으로 가득하다. 어제, 판결이 나오기전 미국사회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다. 정부는 유죄 판결이 안 나올 만약의 경우에 발생할 폭동에 대비하여 경계를 삼엄히 했었다. 다행히 배심원 전원 찬성의 유죄 판결이 나왔고, 데릭 쇼빈은 2급 살인죄(살해 의도가 없는 살인죄)로 수감되었다.

 

정부가 폭동을 염려하여 경계를 삼엄히 한 것은 판결이 유죄로 나오지 않고 무죄로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당연히 살인죄를 적용해야 할 판결이 무죄로 끝난 경우가 너무도 빈번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우려와는 달리 유죄 판결이 나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아시안 혐오 범죄와 연관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면, 배심원 전원의 유죄 판결이 나온 배경에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큰 힘이 된 것 같다. 법이라는 게 원래 이현령비현령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법적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만약 무죄 판결이 나왔다면, 정부에서 감당 못할 폭동이 일어날 게 뻔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불의한 일을 경험했을 때 그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다시 깨닫는다. 요즘 발생하고 있는 아시안 혐오 범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들은 불의한 일,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회적 약자(마이너리티)로서 합당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영어가 서툴러서 그런 면도 있으나 불의에 저항해서 결국 피해를 더 보는 것은 저항한 당사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했다.

 

미국 사회 저변에는 엄청난 심리적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백인들은 죄책감(guilty)에 시달리고, 흑인은 분노(anger)에 시달리고, 아시아인들은 두려움(fear)에 시달린다. 이러한 세 가지의 심리적 불안은 끊임없는 갈등을 미국 사회에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내면적인)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자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이고, 사회 자체가 언제나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런 심리적 불안은 총기사건을 통해 계속해서 분출되고 있다.

 

이번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나 아시안 혐오 범죄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의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불의한 것을 불의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불의는 내면화된다. 내면화된 차별과 혐오는 언제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누가 어떤 곳에서 희생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은 늘 불안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Black Lives Matter"라는 사회적 운동, 즉 목소리를 높이는 운동이 없었다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용의자 판결이 어떻게 나왔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건의 용의자 데릭 쇼빈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법이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가 정의롭기 때문에 나온 판결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의로운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정의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알려야 한다. 정의에 대한 그 간절함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공명될 때, 법은 비로소 정의를 관철시키는 데 봉사하게 될 것이다.

 

불의한 일에 희생당한 모든 이들과 그들의 유가족, 그리고 정의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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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