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리를 생각하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 안에 있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계시록 1:9).

 

요한이 하고 있는 '형제/자매'라는 자기 규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환란을 당하면서도 인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의 동일화(identification)이다. 누군가와 동일하게 되는 일은 중요하다. 그 사람이 환란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은 고난 당하지 않으면서 고난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일은 공허하다. 동정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동일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며 그들을 동정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신앙일 뿐이다.

 

요한은 밧모 섬에 있다. 그는 유배 중이다. 그곳에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요한은 그곳에 기꺼이 머문다. 유배를 유배라 여기지 않는다. 그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유배를 당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거하기 위함'이다.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는 지가 중요하다. 자신이 현재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좋은 자리에 가도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날마다 물어야 한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있는 자리는 벗어나고 싶은 유배지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거하기 위한밧모 섬 같은 은총의 자리인가.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