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2. 17. 02:40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


북방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습니다
.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해줬습니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 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장애인이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태연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하여 쳐들어왔습니다.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하였는데 늙은이의 아들만은 다리가 병신이어서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회남자(
淮南子) –

 

우리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은혜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인생을 무책임하게 사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새옹지마의 마음을 갖고 사는 건 우리 앞에는 언제나 희망이 놓여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모두 새옹지마처럼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만, ‘엎친 데 덮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 계속되는 날도 있고, 나쁜 일이 계속되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지금 당장은 지긋지긋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 때가 그리운 법입니다. 그런데 이건 시간이 만들어주는 착각일 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그것이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었을지라도 말이죠.

 

새옹지마와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은 좋아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그것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쳐야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모리아 산으로 삼일 길을 걸어가면서 수많은 갈등에 휩싸였을 겁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았다고 좋아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니요! 차라리 아들을 영영 못 낳았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던 데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끝에는 결국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입니다. 마지막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는데 서투릅니다. ‘제물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끝간데 모르는 갈등 속에서 대답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그야말로 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의 탄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새옹지마와 같지만,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인생은 새옹지마와 같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의 인생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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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