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눈이 멀었으니까 제 정신일리가 없지
눈이 멀었으니까 본 대로 말하지 못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대로 말하는 거야
눈 먼 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오지에서 먹는 음식물 같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맛보아야 하는
미각의 슬픔을 너는 상상이나 해봤니
눈 먼 아비의 손을 잡고
사막을 떠돌아야 했던 꽃다운 안티고네는
이미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어
“눈 먼 아버지는 눈이 먼 채로 혼자 걸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너는 누구니
* 박연준 시 ‘안티고네의 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