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23. 10. 14. 03:48

슬픔

 

눈이 멀었으니까 제 정신일리가 없지

눈이 멀었으니까 본 대로 말하지 못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대로 말하는 거야

 

눈 먼 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오지에서 먹는 음식물 같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맛보아야 하는

미각의 슬픔을 너는 상상이나 해봤니

 

눈 먼 아비의 손을 잡고

사막을 떠돌아야 했던 꽃다운 안티고네는

이미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어

“눈 먼 아버지는 눈이 먼 채로 혼자 걸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너는 누구니

 

 

* 박연준 시 ‘안티고네의 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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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