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0. 1. 4. 01:52

흔들리며 성장하는 믿음

(마태복음 14:22-36)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2019년 한 해, 흔들리면서 잘 살아왔다. 찬양이 저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시간을 돌아보면 그렇지만, 어려운 순간 순간에서는 이러한 찬양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다.

 

출애굽기를 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큰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긴 세월동안 자기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기 위하여 모세라는 지도자를 준비하신다. 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은 가까스로 출애굽에 성공한다.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 때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했던 말씀은 유명하다.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

 

정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자마자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 높이 찬양한다. 그런데, 그들은 수르 광야로 들어서 사흘길을 걸었는데, 물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겨우 발견한 물이 있었는데, 먹으려고 보니, 써서 못 먹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이 마라(쓰다)’이다. (먹지 마라,의 마라가 아니라, ‘쓰다의 마라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큰 역사를 통해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과 시련을 당하더라도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물이 없자, 금방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이게 우리 인간의 연약한 모습이다. 이것은 나쁜 게 아니라, 우리의 본연적인 모습이다.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마시게 만들어 주신다.

 

본문은 이러한 정황을 담고 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교회를 시작했으나, 마태공동체(교회)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마치 그것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 갈릴리는 원래 호수이다. 그런데 너무 커서 호수라고 안 부르고 바다라고 부른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상상태가 변해 고요하다가도 풍랑을 만나기 일쑤다. 갈릴리 호수는 지금 고난을 겪고 있는 마태공동체(초대교회)를 표현하기에 딱 좋은 메타포이다.

 

마태공동체가 겪는 고난을 본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24). 배는 마태공동체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가 시작된 지 시간이 지났다. 이제 다시 배를 육지로 돌이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것을 본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24). 예수에 대한 신앙은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앙공동체는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고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토요일(1228) 어른 넷, 청년 셋, 이렇게 7명이 에머리빌항구에서 고기잡이 배를 타고 출항했다. 날씨는 좋았으나, 파도가 좀 높게 출렁였다. 나름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옷도 스키복으로 따스하게 입고, 멀미약도 먹고 붙였다. 따스한 물도 준비했고, 먹어도 크게 부담이 없는 간식들도 준비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공기는 청아했다. 지나치면서 본 샌프란시스코와 알카트레즈, 그리고 금문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금문교를 지나 앞으로 나아가니 태평양이 펼쳐졌다. 등대가 깜빡였다. 파도가 절벽을 쳤다. 등대의 깜빡임과 절벽을 끊임없이 때리는 파도소리는 감성을 자극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뱃머리에 앉아, 파도의 출렁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쯤 지났다. 이제는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와서’ 돌이킬 수 없는 거리에 당도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반복해서 출렁이는 파도를 몸이 견디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가 어지러워 왔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손과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몸을 눕히고 싶었다. 그런데, 배 안에 몸을 눕힐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이미 좋은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자비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뱃머리에 몸을 눕혔다.

 

육지를 떠나 바다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파도는 거세 졌다. 파도가 배를 덮쳤다. 바닷물이 뱃머리에 누워 있는 나를 덮쳤다. 그래서 나는 바닷물에 젖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내 몸을 적시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었고, 피할 방법이 없었다. 머리는 계속 어지러웠고, 팔 다리에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존재가 이렇게 나약할 수 없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더 가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배가 섰다. 배가 서니 출렁임이 더 심해졌다. 더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고기를 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이들이 자연스럽게 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려 있는 의자가 공석이 되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곳으로 가서 몸을 눕혔다. 찬 바닥에서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을 눕혀서 고통은 약간 덜했지만, 이제 바람이 불면서 젖은 몸이 추워졌다. 몸을 떨었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엄마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순간 마침 챙겨온 손난로가 생각났다. 손에 쥐는 아주 작은 난로였다. 나는 그것을 부여잡고 추위를 견뎠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깨어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는 동안 몸은 체온유지를 하기 위해서 저절로 뜨거워져 있었다. 그래서 추위가 사라졌다. 잠에서 깨니 뜨거워져 있던 몸이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또 추웠다. 나는 잠 들려고 노력했다. 잠을 자면 몸이 저절로 뜨거워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통 가운데, 8시간 동안 배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고기잡이 배가 다시 금문교를 통과해서 항구로 입항할 때쯤 몸을 다시 가눌 수 있었다.

 

본문에서 말하는 물결로 말미암아 당한 고난은 멀미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다. 그것은 리얼이다. 가상의 고난이 아니다. ‘리얼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고통이 극심해졌을 순간, 밤 사경(새벽 3-6시경), 밤이 가장 깊은 시간, 즉 고통이 가장 극심한 순간에,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발견한다. 제자들은 처음에 그것이 유령인 줄 알았다. 죽음의 고통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는데,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결정적 한방이 온 줄 알고, 그들은 놀라서 소리쳤다.

 

그런데, 다행히 그것은 유령이 아니고, 예수님이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27). 예수님인 것을 확인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28). 이것은 고통 가운데서 외치는 간곡한 기도이다. “주님, 지금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라고, 물 위를 너도 걸어보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능히 이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힘을 내서 바다 위를 걸어본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예수님만 보고 물 위를 걸어갔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베드로의 눈에는 예수님이 안 보이고 이상한 걱정이 들었다. 바람이 부니, 파도가 쳐서 자기를 덮칠 거라 생각했다. 그러는 순간 베드로는 바다에 빠져갔다. 베드로는 소리쳤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30). 예수님은 바다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31). 그리고, 베드로를 건져주신 예수님은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른다. 그랬더니, 바람이 그쳤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함께 사역을 하며 하나님께, 또는 내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동역자는 참 귀하다!” 생각해 보라. 출애굽 해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하나님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나 저러나, 그들은 출애굽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출애굽하지 않고, 그냥 애굽에 남아 있었다면, 그러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귀한가! 원망 없이, 불평 없이, 어떻게 출애굽을 하며, 그 험한 광야를 어떻게 건너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고 있는예수님의 제자들이 참 귀하다. 그들이 배를 타지 않았다면, 그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지 않았다면, 그러한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를 탔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를 건넜다. 그러다 그들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러니, 고난 당하고 있는 그들 입에서 나오는 원망과 불평, 그리고 탄식이 얼마나 귀한가.

 

사역(ministry)을 진짜(real)로 하지 않으면, 고난도 없다. 파도가 일렁이는 배를 타지 않으면 멀미때문에 고난 당할 이유가 없다. 배를 탔을 때 겪는 뱃멀미가 리얼이듯이, 사역을 하면서 겪는 고난도 리얼이다. 그러니, 뱃멀미 하면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사역을 하면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믿음이 없어서 그러한 탄식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사역하면서 고난을 리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가!

 

사역하면서 우리교회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은가? 바로 나다! 나는 매일 운다. 울면서 나는 매일 원망한다. 불평한다. 탄식한다. 배 타고 8시간 동안 꼼짝 없이 뱃멀미하며 신음했듯이, 어쩌지 못해, 매일 신음한다. 가장 많은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늘어놓는 나를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신다. ? 내가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이고, 애굽을 따라나서 출애굽 했기 때문이고, 배에 올라타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면서 겪는 고난을 리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역은 장난이 아니다. ‘리얼이다. 배를 타고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넘는 것과 같다. 사역을 하면 고난을 당한다. 그 고난은 가상이 아니다. ‘리얼이다. 고난이 리얼이기 때문에, 입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하는 척 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도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사역을 하면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쏟아 놓은 사역자를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하게 여기시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고기 잡으러 나가서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하고, 꼬박 8시간 동안 뱃바닥에 붙어 있다 왔지만, 나는 행복했다. 좋은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우리가 두고두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며,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많이 당했지만, 2019년도 바로 여러분들이 곁에 있고, 여러분들과 사역하면서 행복했다.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믿음은 없다. 사역은 리얼이기 때문에, 리얼로 고난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사역을 하면서 겪는 고난때문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쏟아져 나오거든, 참지 말고 내놓으시라. 나한테도 내 놓고, 주님께도 내 놓으시라. 괜찮다. 믿음이 적어서 나오는 탄식이 아니라, 여러분이 리얼로 사역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새해에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You're in good hands  (0) 2020.01.14
기억하고 기대하라  (0) 2020.01.06
세상의 모든 라헬을 위한 기도  (0) 2020.01.04
Dangerous Memory (위험한 기억)  (1) 2019.12.24
말씀과 기도는 왜 중요한가  (0) 2019.12.16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