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운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육신의 근육이 튼튼하지 못하면 운동하기 힘든 것처럼, 기도의 근육이 튼튼하지 못하면 기도하기 힘듭니다. 육신의 근육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 조금 숨가쁘게, 내가 해 낼 수 있는 운동량보다 조금 더 해야 근육의 힘이 조금씩 늘어나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양보다 조금 더 기도해야 기도의 근육도 조금씩 튼튼해져 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근육이 튼튼해지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만큼 기도할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하겠지만, 육신의 근육이 아무리 튼튼해도 일정 양 이상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롭듯이, 기도도 마찬가지로 일정 양 이상 기도하면 영혼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어긋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쉬지 말고 운동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기도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의 맥락에서 보아야지 기도의 양적인 면에서 접근하면 곤란하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필요 이상 오래하면 부작용이 생기는데, 교만이라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행위인데, 에덴동산에서 하루 종일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면서 살았던 아담은 그만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에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곁에서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찬양했던 천사장 루시퍼도 그만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에 하나님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도를 필요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도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하다 보면 마음이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기도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하면 쫓겨났던 귀신이 친구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삼일 금식 기도니, 사십일 금식 기도니 하는 기도들이 있는데 그러한 기도에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능력 주실 때 해야 하는 것이지, 호기심과 영웅 심리로 괜히 감당도 못할 것을 행했다가 영혼의 형편이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기도는 호기심도 아니고 애들 장난도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존재를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를 너무 많이 하게 되어서 영혼이 망가질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언제 필요 이상으로 기도한 적이 있었던가요? 하루에 한 시간, 아니 삼십 분이라도 기도해 보고 그런 걱정합시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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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