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교회 목사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르심/소명)

 

도시의 큰 교회를 가고 싶어하는 목회자는 많아도, 시골의 작은 교회를 섬기고 싶어하는 목회자는 별로 없다.

 

나는 작은 목회를 해본적이 한 번도 없는데,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작은 교회'라고 부른다. 내가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작은 교회 목사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보고 작은 교회 목사라고 말한다.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재정의 압박이 아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작은 교회에서 큰 목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나의 노력과 내 메시지의 무게를 몰라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겸손하게 나의 이야기를 해본다. 나는 3대째 목회자이다. 우리 집안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집안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명문대를 졸업했다. 유치원만 안 나왔지, 고등교육의 모든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나의 배경을 '분뇨'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울과 내가 닮은 점이다.

 

나는 교회에서 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교단 목사들에게서 가장 꼴보기 싫은 점은 출신학교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는 점이다. 목사가 됐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하나님께 부름 받았으면 그만이지, 자신이 교육 받은 학교가 무슨 소용인가.

 

레위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불렀다". 그래서 원래 레위기의 히브리 제목은 '와이크라'이다. 출애굽기 마지막 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성막(하나님의 거처)을 완성했지만,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가 비로소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모세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러' 주셨기 때문이다.

 

'부르심', '소명'이 없으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주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 '부르심, '소명'이 없으면 우리는 한 가지의 일도 주님을 위해 할 수 없다. 그렇게 부름 받은 자가 '목사' 아닌가. 그런데, 왜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자기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리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배제한 채, 자신들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기의 왕국을 세우고 있는 집단은 결국 스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 시대에는 '감독'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소명을 입증하는 것이요, 도시의 큰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이 자신의 소명을 입증하는 것이다. 카르텔을 이용하여 감독을 하고, 카르텔을 이용하여 도시의 큰 교회로 자리를 옮겨놓고, '하나님의 부르심' 운운하는 것만큼 역겨운 일도 없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나나 잘하자' 다짐해 본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에서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인양,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부르심이 없는 곳엔 절대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심이 있다면, 지옥이라도 가겠다. 이것은 내가 의로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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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