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19. 3. 13. 03:09

나이키와 고무신

- 신발에 대한 추억

 

생일을 맞아 신발을 선물 받았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선물로 받고 나니, 지난 시절 신발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듯싶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필수품 중 하나인 신발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신었던 신발이 많았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신발은 몇 안 된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신발 중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었던 타이거상표의 신발이다. 검정색 신발인데, 신발 옆에 노란색 줄무늬가 세 개 그어져 있는 신발이다. 내가 그 신발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사진 때문일 것이다. 우면동 1호집에 살 때, 그 신발을 사서 좋아라 하며 화단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나의 사진첩에 남아 있다. 게다가 4학년 정도면 기억이 생생할 때라 그때 그 신발을 사고 좋아하던 감정이며, 그 신발을 신고 사진을 찍던 장면이 모두 기억에 남아 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신발은 중학교 2학년 때 샀던 프로스펙스 농구화이다. 가격도 기억이 난다. 2만 4천 5백원. 그 당시에 이 정도 가격이면 비싼 축에 들었다. 농구를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이라 부모님에게 몇 주일을 졸라 산 신발이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농구화였는데, 흰색 가죽에 빨간색 프로스펙스 상표가 달린 신발이었다. 그 신발을 사고 얼마나 좋았는지,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나는 그때 그 신발을 사놓고 한동안 장롱 위에 올려 놓고 신지 못했다. 목사 아들로서 가격이 꽤 나가는 신발을 신고 바깥을 나가는 게 두려워서였다. 그 당시만 해도 메이커 제품을 신고 다니면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던 시절이라, 선뜻 남들의 시선을 받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새로 구입한, 내 생애의 처음 메이커 신발, 그것도 그 당시 엄청 인가 많았던 프로스펙스 농구화를 신지 못하고 장롱 위에 올려 두고 마음을 졸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던 시절이다.

 

그 이후, 어떤 마음으로 그 농구화를 신고 바깥을 나섰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그 농구화를 신고 기분 좋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을 보냈고, 좋아하는 농구를 실컷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당시 나는 영동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농구를 잘하는 친구들과 팀을 결성하여 이웃 학교인 서운중학교 농구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자주 가지곤 했다. 그때, 외곽에서 3점 슛을 펑펑 쏘아 대던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 번째로 생각나는 신발은 2006년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신었던 Clark 신발이다. 그냥 편안한 세미 가죽의 신발인데, 영국와 프랑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땅을 밟았던 신발이라, 게다가 알프스의 융프라우요흐를 밟았던 신발이라서 그런지, 그 신발이 닳아서 버리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신발은 고무신이다. 고무신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이 신발이 가장 기억에 남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무신을 자주 신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고무신에 마음이 갔다. 그래서 특별한 일 없는 한 고무신을 주로 신고 다녔고, 그게 학창시절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했다.

 

특별히, 하얀색 고무신에 매직으로 나이키 상표를 그려 넣어, 나이키 고무신을 만들어 신었다. 그 당시 나이키 신발은 프로스펙스 신발과 더불어 신발계를 주름잡고 있었는데, 나이키 상표는 그리기도 쉬워 고무신에 나이키 상표를 그려 넣은 뒤, 친구들에게 나이키 고무신이라고 우기며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적도 있다. 고무신을 빼앗겨 실내화를 신고 집에 온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웃음이 지어지는 재밌는 추억이다. 게다가 교회 등산 행사 때, 고무신을 신고 북한산 백운대 꼭대기를 올라간 적도 있다. 그때의 추억은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그 사진을 보면 참 앳된 중학교 2학년 아이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렇게 고무신을 씩씩하게 신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겨울에는 털 달린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나름 따뜻했다. 물론 눈이 많이 온 날은 신지 못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주로 털 달린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내가 이렇게 고무신을 자신 있게 신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교회의 학생부 시절 전도사님 덕분이었다. 지금은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이세우 목사님은 그 당시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나에게 큰 격려를 해 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른 이들 같으면 고무신 신고 다닌다고 핀잔을 주었을 텐데, 그분은 핀잔은 커녕 좋은 일, 멋진 일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생일 선물로 신발을 받으니, 신발과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신발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생일을 맞아 신발을 선물로 받아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카드에는 이런 문구도 써 있다.

 

신발 신고 다니시는 곳마다 만남의 축복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권능이 목사님과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새 신발에 정말로 이러한 은총이 내리기를 소망한다.


* 새로 산 신발의 메이커는 나이키도 프로스펙스도, 고무신도 아닌, New Balance 운동화다. 요즘 트랜드가 그렇다. 나는 멋을 아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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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