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16. 4. 18. 05:17

집게벌레와 한 여름 밤의 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의 소설 <날개>의 첫 문장이다. 나는 오늘 집 근처에 있는 캘러웨이 가든(Callaway Garden) 나비관에 가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못 봤지만, 대신 박제가 되어버린 집게벌레를 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어느 덧 곤충과 멀어진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나이지만, 박제된 집게벌레를 보니 어린 시절 집게벌레를 잡기 위해 친구들과 한 여름 밤 숲 속을 헤매던 시절로 돌아가는 듯 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곤충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장난감'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모형으로 된 곤충을 가지고 놀지만,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진짜 곤충을 가지고 놀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은 장수하늘소, 딱정벌레, 쇠똥구리, 잠자리, 매미, 그리고 집게벌레였다. 이 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곤충은 집게벌레였다. 집게벌레도 여러 종류가 많았는데, 일반 집게벌레와 돼지 집게벌레, 그리고 사슴집게벌레가 대표적이었다. 이 중에서 사슴집게벌레가 가장 멋있고 화려했다. 사슴집게벌레를 잡은 친구는 사슴 뿔 같이 화려한 왕관을 쓴 양 우쭐해 했다.

 

집게벌레를 잡으려면 밤까지 기다려야 했다. 벌레들은 대개 야행성이라 낮에는 잠 자고 밤에 활동한다. 밤에 집게벌레를 잡으러 산에 가는 일은 무서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낮 동안 친구들과 돌면서 오늘 밤에는 함께 모여서 집게벌레 잡으러 가자는 약속을 한 뒤, 저녁 먹고 해가 지면 놀이터에 모여서 집게벌레를 잡으러 함께 다녔다.

 

집게벌레를 잡으러 깊은 산 속까지는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어릴 때 보통 산에서 놀았기 때문에 어느 곳에 집게벌레가 살만한 나무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단단하고 곧게, 그리고 아무런 상처도 없이 쭉 뻗은 나무에는 집게벌레가 없었다. 좀 허약해 보이고, 특별히 상처가 나 구멍이 뚫려 있거나, 마치 엄마의 자궁인 양 깊이 패인 둥근 아기집을 품은 나무들에게 집게벌레가 붙어 살았다.

 

집게벌레가 살고 있을 만한 나무를 찾으면 우리는 준비해간 후래쉬를 밝게 비추었다. 그러면 영락 없이 집게벌레가 집 밖으로 나와 나무에 붙어 있었다. 행동이 느린 집게벌레는 갑작스런 발각에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미소를 머금고 집게벌레를 두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 준비해간 빈 깡통에 집어 넣었다.

 

집게벌레를 한 번에 많이 잡지는 않았다. 각자 한 두 마리 정도 잡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다음 날 학교 다녀와서 지난 밤 잡은 집게벌레를 가지고 놀이터에 모였다. 그리고 우리는 집게벌레끼리 싸움을 붙여 내기를 하곤 했다. 내기라고 해봤자 동네 수퍼에서 브라보콘이나 바밤바를 사먹는 게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놀았다.

 

요즘엔 곤충도 별로 없을뿐더러, 여름이 되면 곤충을 잡기 위해 친구들과 산으로 삼삼오오 짝지어 다니는 아이들도 없다. 자신들은 그렇게 놀았으면서도 막상 곤충 잡으러 산에 가겠다는 아이들에게 허락해 주는 부모도 없다. 세상이 그만큼 흉흉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점점 자연과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아이들이 곤충을 접하는 것은 자연박물관이나 파브르의 <곤충기>같은 책, 또는 부모의 어릴 적 모험담에서가 전부인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살고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에, 집게벌레 잡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누군가의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 되어버렸을까. 박제가 되어버린 건, ‘천재, ‘집게벌레도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박제가 되어버린 건, ‘한 여름 밤의 꿈인 것 같다. 박제된 것은 살아 있는 게 아닐 터, 나는 오늘 잃어버린 꿈들이 살아 숨쉬는 그런 세상을 다시 한 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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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