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16. 3. 19. 02:50

젖니 가는 고통

 

여서 일곱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고통은 젖니를 갈아내는 이빨 빠지는 고통이어야 한다. 어린 영혼은 그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서는 안된다.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서 일곱살 즈음 울퉁불퉁한 기억이 없다. 젖니 가느라 아팠던 기억, 감나무에 올라가 놀다 내려오는 중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팔이 부러져 한강정형외과에 가서 치료 받으며 아팠던 기억이 전부다. 이것은 나의 부모님께, 또는 하늘에 계신 그분께 감사한 일이다.

 

요즘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회적 문제가 아동학대이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심지어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 고사리같은 생명을 잃는 여서 일곱살 밖에 안 된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찢어진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정의의 핵심은 힘 없는 약자를 돌보는 것이다. 그 약자에는 과부와 어린이가 포함된다. 현대사회에서 과부는 더이상 약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어린이는 여전히 약자일 수 밖에 없다.

 

폭력은 강자와 약자의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악이다. 더 힘센 사람은 자신보다 힘이 약한 존재에게 자신이 당한 폭력을 대물림하듯 가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폭력의 도미노 현상인데, 그 마지막은 항상 어린 아이일 수 밖에 없다.

 

자아가 형성될 시기에 가해지는 폭력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인격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이미 심리학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 속에서만 '성장'할 뿐, 그것을 넘어서면 고통 속에서 익사해 죽고 만다.

 

여서 일곱살 먹은 어린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은 젖니를 갈아낼 때 겪는 고통을 넘어서면 안된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주셨다. 어린 아이의 눈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 새싹처럼 연한 생명을 짓밟는 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으리라.

 

여서 일곱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고통은 젖니를 갈아내는 이빨 빠지는 고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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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