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2. 10. 19. 03:01

약속의 말씀이 중요해

(로마서 9:1-13)

 

1. 바그너 음악을 좋아하세요? 바그너 음악은 아주 문제적이죠. 그래서 바디우나 지젝 같은 철학자들이 바그너의 음악이 가진 정치적 의미들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바그너는 위험한가, 북인더갭, 2012) 바그너를 말하면 히틀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최애한 독일의 음악가였죠. 멘델스존도 독일의 음악가였는데, 히틀러는 멘델스존을 미워했습니다. 그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얼마나 미워했는지, 멘델스존의 동상을 쓰러뜨리고, 그의 유산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할 정도였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히틀러는 바그너를 최고의 영웅으로 추켜세웠습니다. 바그너는 순수 독일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은 독일인의 정신을 고취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바그너의 음악은 선동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2. 로마서를 살펴보면서 바그너와 히틀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로마서에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11장이 바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죠. 사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유대인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다 보니, 그들의 성공에 관심을 두고,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만(특별히 그들의 하브루타 교육법),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유대인이라는 민족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일이 시간 낭비 같아 보입니다.

 

3.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바로 로마서에서 바울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엄청난 고뇌와 번민을 하고 있는 본문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9장 1절을 보면, 바울은 무언가 비장한 말을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바울은 심장에 슬픔과 번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장에 슬픔과 번민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입니다. 얼마나 답답할까, 불쌍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러한 상태에 처해 본 적 있으신가요?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가득해서,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그런 일 말이죠.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혹시 그러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심장을 가볍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4. 왜 바울은 자신의 심장에 슬픔과 번민을 가득 안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주 괴상한 일이 발생했는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유대인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죠. “왜 유대인 대부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에게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는지,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가득하여 숨을 못 쉴 지경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을 지,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5. 우리는 그냥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거라고 말이죠.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를 제2의 이스라엘이라고 칭하면서, 하나님께서 촛대를 이스라엘에서 교회로 옮기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주 손쉬운 해결법이죠. 그런데, 로마서를 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거의 소설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왜곡하는 일이죠. 바울은 결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 걸쳐,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룹니다.

 

6.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의 본문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유대인이 아닌 내가 왜 이렇게 지루한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흥미를 전혀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이 우리에게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지나치게 이스라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선을 갖거나, 또는 이스라엘과 그릇된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로마서의 본문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면 됩니다. (특별히, 이 부분은 로마 교회의 컨텍스트에서,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7. 우리가 읽은 본문과 관련해서 논의 좁혀,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이나 일상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우리는 기도를 배웁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저주를 받기까지 자신의 혈족인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가득하여 답답한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심장이 답답한 일이 있는데, 기도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겁니다. 답답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한 것이죠.

 

8.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문제는 바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유대인들에게 벌어진 일은 회개와 믿음이 아니라 바울을 향한 뭇매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바울을 구박했습니다. 죽일 정도로 구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의 심장에는 슬픔과 번민이 쌓여갔습니다.

 

9.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쌓였다고 해서, 모두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속상한 일이 있는데도, 기도하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면, ‘기도하는 행위’ 자체도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셔야 할 수 있는, 거룩한 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또한,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고 허락하신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겠죠. 그래서 기도는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가득할 때,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10. 여러분의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쌓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발걸음이 기도의 자리를 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그토록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쌓이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도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후퇴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장에 슬픔과 번민을 쌓아 놓지 마십시오. 기도의 자리에 나아와 그 슬픔과 번민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11. 둘째로, 이스라엘이 가진 특권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이러한 특권을 가진 나라, 민족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특권 때문에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큰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특권,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특권과 능력은 오히려 저주라는 것입니다.

 

13. 우리는 자녀들에게 특권과 능력을 물려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래서 좋은 학군에서 교육시키고 싶어하고,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우월한 위치에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인생을 사는,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은 참 알 수 없습니다. 특권과 능력을 가지면,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뿐더러, 내가 가진 특권과 능력이 오히려 나의 발목을 잡거나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딱 그랬다는 것이죠. 이것은 바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정통 유대인으로서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에 아주 열심이었는데, 바울이 가진 바로 그러한 특권이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4.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즉 자신의 모든 특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도 작정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깨달았던 것은 그가 가진 모든 인간적인 특권은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모두 잠정적인 능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생명을 맡기고 인생을 맡긴다는 것은 도박처럼 불안하고 불안정하고 의롭지 못하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것을 바울은 깨달았기 때문에, ‘오직 예수(Only Jesus)’를 외쳤던 것입니다.

 

15.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자신에게도 그렇고,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고, 특권과 능력을 갈망하고 물려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물려주십시오. 여러분이 가지려고 하는 특권과 능력,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특권과 능력은 우리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특권과 능력이 오히려 가장 귀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가진 특권은 이 세상 어느 민족 누구에게도 없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방 나라에서 받아들인 것보다 훨씬훨씬 적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고, 우리의 자녀들도 그렇고, 하나님의 은혜 자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최고의 특권이고 능력인 것을 믿으십시오.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전하십시오.

 

16. 셋째,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약속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기를 간구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것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8명의 자녀 중, 오직 한 명, 이삭만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세 명의 부인(사라, 하갈, 그두라) 중 오직 한 명, 사라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은 사라가 이삭을 낳았고, 약속의 말씀으로 태어난 이삭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역전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17. 우리는 살아가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노력이 우리를 복된 삶으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도대체 복된 인생, 행복한 인생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해, 그냥 그렇게 일상에 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말씀은 무엇이 복된 인생인지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받으려고 간절한 마음을 품은 적이 있으십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할지, 우리는 대개 막막한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본토진척 아비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른 이유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때문에,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고, 그 일을 감당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8.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주님께 자비를 구하며,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라고, 약속의 말씀을 간구하십시오. 성경을 읽는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예배드리는 가운데, 찬양하는 가운데, 봉사하는 가운데, 친교 나누는 가운데, 주님이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약속의 말씀을 전해주실지 모릅니다. 약속의 말씀을 간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말씀을 주십니다. 다만, 우리가 구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하십시오. 약속의 말씀 한 마디가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19. 세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첫째, 기도의 자리에 나오십시오. 심장에 슬픔과 번민이 쌓일 때 기도의 자리에 나오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세요. 둘째, 우리가 가진 특권과 능력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기억하면서, 구원 자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임을 잊지 마세요.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약속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그 한 말씀만 있으면, 인생은 역전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사모하기를 마치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사모하십시오. 아니 그보다 더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멘.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