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러시아의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 P. Mussorgsky, 1839-81).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강력한 음악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19세기는 ‘낭만주의’ 사조가 예술계를 휩쓸던 시기입니다. 이성에 경도되어 모든 것을 ‘과학적 사실’로 증명하려고 했던 시대에 사실, 또는 현실을 초월한 공간을 창조함으로 사람의 마음과 삶에 숨쉴 공간을 제공했던 것이 낭만주의입니다. 그런 낭만주의에 가장 가까웠던 예술은 음악이었습니다. 반대로 사실주의에서 가장 먼 것도 음악이었습니다. 음표로 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림과 비교해 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물론 그림도 사진이나 동영상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긴 했지만요.) 그러나 음악의 음표를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죠.

 

무소르그스키는 그림(회화)에 비해 음악의 표현력은 제한된다는 생각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음악을 그림처럼 눈에 보이듯이 표현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낭만주의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낭만주의 음악가들 사이에서 무소르크스키의 지위는 독특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던 것,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하던 것을 통해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전람회의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절친 빅토르 하르트만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작품입니다.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무소르크스키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죽은 친구의 유작을 모아 전시회를 엽니다. 전시회의 작품 중 깊은 인상을 받은 10개의 작품을 골라, 무소르그스키는 친구의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전람회의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전람회의 그림>에는 죽은 친구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담겨 있는 동시에 음악적 제약을 뛰어넘은 혁신-창조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후 수많은 음악가들이 원래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된 <전람회의 그림>을 여러 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합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죠. 그 중에서 모리스 라벨(J. M. Ravel)의 관현악 편곡 연주가 가장 유명합니다.

 

<전람회의 그림> 열 개의 작품 중 여덟 번째 작품의 표제가 ‘카타콤’(Catacombae)입니다. 이 곡은 하르트만이 랜턴을 들고 파리의 카타콤을 조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해 카타콤(지하 공동묘지)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은 로마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 그리스도교인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카타콤에서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우리는 카타콤교회라 부릅니다. 카타콤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산 자와 죽은 자를 포용하는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하 공동묘지에서 예배드리며 삶과 죽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주 현실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런 깨달음은 그들의 신앙을 더 깊고 단단하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더 이상 신앙의 핍박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삶과 죽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죽은 자들과 교통하고, 마치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과 교통하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알았던 카타콤교회의 교인들의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의 신앙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세속적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100세 시대를 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영원히 살 것처럼 삶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욕망, 그리고 죽은 자들과 교통하는 영성을 잃은 시대에 살다 보니, 마치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약자들을 향한 우리들의 무관심 등이 우리의 신앙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의 자화상을 반성하며, 오늘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한 번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