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9. 12. 10. 07:08

복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사도행전 5:27-42)

 

200611월에 시작하여 2007년도 7월에 막을 내린, MBC<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이 있다. <순풍산부인과> 이래 최고의 인고를 끈 시트콤으로 기억되는 TV 프로그램이다. <순풍산부인과>를 통해서 송혜교가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박민영, 정일우, 김범 등이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특별히 정준하와 박해미의 부부역할, 그리고 야동순재로 이름을 날린 이순재의 연기가 돋보인 드라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제목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지만, 이 시트콤은 한마디로 유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한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은 이들이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서 함께 웃고 울며 즐거워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연상케 한다. ‘유쾌통쾌상쾌의 코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활동에 중점을 둔 성경이고, 바울서신은 본인이 개척한 교회를 잘 세워 나가려는 복음과 교훈에 중점을 둔 성경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신약성서 내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수의 승천(부재) 이후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어떻게 성령과 더불어 역동적으로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한, 활동이 담겨 있다.

 

사도행전을 보고 있으면, ‘이게 뭐지?’라는 질문이 저절로 생긴다. ‘복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성령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들은 이렇게 세상을 향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세상은 여전히 답답하고 악이 판을 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모습은 유쾌통쾌상쾌하기 그지없다.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못하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유쾌통괘상쾌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고 있다.

 

본문은 사도들(제자들)의 예루살렘 사역의 절정을 다루고 있다. 유대인 공의회는 사도들을 협박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일도 하지 마라고 했지만, 사도들은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계속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사도들의 행동을 통하여 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으며, 교회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성장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고, 들어가고 결심한 백성들이 줄을 섰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유대 지도자들은 시기(젤로스)’에 가득 찼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또 잡아다가 공의회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주의 천사가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성전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사도들을 감옥에서 놓이게 한다.

 

공의회 감옥에 갇혀 있는 줄 알았던 사도들이 감옥에 있지 않고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보고 당황한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들을 잡아 다시 공의회 앞에 세운다. 대제사장이 묻는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온 예루살렘을 너희 가르침으로 가득 채우고 이 사람에 대한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구나!”(28/우리말성경).

 

이에 대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29/우리말성경). 그리고 그 앞에서 유쾌통쾌상쾌한 모습으로 그들이 가르치지 말라고 한 복음을 다시 전한다. “당신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그 예수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주시려고 예수를 그분 오른편에 높이셔서 왕과 구세주가 되게 하셨습니다.”(30-31/우리말성경).

 

사도들은 왜 이렇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것일까? 이어지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의 증인이고 하나님께서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 또한 그 일들의 증인이십니다”(32/우리말성경). 사도들이 이렇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언하시는 분이기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 또한 성령과 더불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증인이 되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이 그들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을 향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것은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성이 아니라 역동성이다.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내주하여 일어나게 되는 구원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사도들에게 한 방 맞은 공의회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회개대신에 크게 노를 발한다. 사도들의 거침없은 하이킥이 그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곧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이다. 지도자들의 불감증이 얼마나 심한 지, 자신들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모습이 전혀 없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태복음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 그들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피를 우리와 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7:25).

 

이 구절은 굉장히 논쟁적인 구절이라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 그 구절을 근거로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대학살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 굉장히 사악한 해석이다. 성경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성경은 복음이 아니라 사람 잡는 살인병기가 된다. 이 구절은 유대인들의 무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함은 죄에 대한 불감증의 증세도 보인다.

 

자신의 죄를 들추려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죄가 드러나면 사람들은 보통 회개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죄 없는 사람인 양 변명하고, 오히려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사람을 공격한다. 죄는 이래저래 미움과 다툼과 분열을 낳는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게 은혜다. 그 기회를 회개라 한다. 회개는 대단한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상황을 탄생성(natal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사도들의 거침없는 하이킥에 한 방 맞은 공의회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반격에 나선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도들을 죽이려 한다. 그때, 바리새인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이 공의회 회원들에게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가말리엘은 덕망 있는 율법학자로서, 우리에게는 사도 바울의 스승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가 행한 연설은 매우 설득력 있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여러분이 지금 저 사람들에게 하려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언젠가 드다가 나타나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양 공포하고 다니자 400명가량의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했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끝났습니다.

그 사람 뒤에도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인구 조사를 할 때 나타나서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반란을 도모했지만 역시 죽임을 당했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경우에 대해서도 내가 한마디 하자면 저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둡시다. 만일 그 목적이나 행동이 사람에게 비롯된 것이라면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이 사람들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행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해 싸우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35-39/우리말성경).

 

우리 나라 말에는 그 헬라어의 표현 문법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말리엘의 연설에서 쓰인 첫 번째 문장은 개연조건문(eventualis)이 쓰인다. ‘만일 그 목적이나 행동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은 미래에 있을 가능성을 가정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에서는 사실 조건문(realis)이 쓰인다.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은 사실을 나타내는 문장이다. 물론, 이것은 가말리엘 자신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을 쓴 누가의 의도된 문장이다. 누가는 가말리엘의 연설을 통해서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났으므로(사실이다!), 너희는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고, 이들을 박해하므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증거가 이어진다. 가말리엘의 설득력 있는 연설에 의해 공의회는 사도들을 죽이지 않고 채찍질 몇 번을 한 뒤 그들을 놓아준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것을 기분 나빠 하거나 불쾌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유쾌통쾌상쾌하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사도들은 예수 이름을 위해 모욕당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고는 기뻐하며 공의회를 떠났습니다”(41/우리말성경).

 

복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이 증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과 더불어 전하는 복음의 증언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죽어도,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성령 또한 영원하시니,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고 힘들어도, 이 세상이 아무리 세속에 물들어 교회가 힘을 잃는 것 같고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도, 복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성령을 받는 한, 성령과 더불어 행하는 우리의 증언이 그지치 않는 한, 교회는 죽지 않는다. 그러니, 성령을 날마다 간구하며, 힘을 내자.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유쾌통쾌상쾌하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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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