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고 돌아왔습니다]
호머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이우스가 고향으로 귀향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하고 있죠. 긴 여행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여행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오디세이우스는 여행을 통해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영웅이 갖춰야 할 덕들을 모두 갖춘 인물로 거듭납니다. 여행은 오디세이우스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특별히 바다에서 만난 사이렌과의 대결은 오디세이우스에게 절제와 인내의 덕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이렌은 커피 업체 스타벅스의 상징이기도 하죠. 사이렌은 뱃사람들에게 큰 시련입니다. 그것을 물리친 뱃사람만이 진정한 뱃사람인 것이죠.
여행은 참 신비롭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행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은 것이다”(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사람은 여행을 통해 한 권을 책을 읽는 것만큼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일 겁니다. 여행을 하지 않으면 겉도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겠구요.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괴테는 특히 이탈리아 여행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괴테는 여행을 통해 젊음을 되찾는 기쁨과 영혼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의 이번 한국 여행이 딱 그랬습니다. 이번 한국 여행은 이전 여행과 달랐습니다. 성장한 느낌을 받았고, 세상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또렷하게 찾은 것 같았습니다. 한 권의 책을 썼고, 그 책으로 인해 사람들을 만났고,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을 통해 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참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통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기후변화는 기후가 변화하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주체를 새롭게 구성해 주는 진리 사건이다.”는 주제를 둘러싼 인문학/정치신학 이야기였습니다. ‘기후변화’는 화두일 뿐입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말, 제가 한 말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달랐던 가장 중요한 이유,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제 말이 귀를 기울여 주시고 공감해 주신 이유는 제가 기후변화를 자연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론의 문제로 보고, 그것을 인문학/정치신학으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기후변화 문제는 인간을 깊이 관찰하고 돌아보고 재구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장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지만, 결국 인간의 한 존재인 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저는 인간이고,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참 가련한 존재입니다. 필연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그래서 구원이 필요한 존재. 그것이 바로 저 자신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더 진지한, 그리고 더 애정 어린 연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성경도 결국 호모 사피엔스의 가련함과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주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정말 궁금해졌습니다. 이것은 곧 호모 사피엔스의 한 개체인 저 자신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그 종에 속한 개개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우리에겐 어떤 가련함과 어떤 희망이 있는지, 깊은 사유를 통해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 곧 대림절입니다. 파멸의 운명을 타고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시간 밖에서 우리가 사는 시간 안으로 밀고 들어오시는 메시아의 구원일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희망에 대하여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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