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3. 7. 1. 03:5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도행전 3:11-26)

 

오늘 말씀이 쉬워 보이지만 쉬운 말씀이 아니다. 오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것을 오늘 다 살펴볼 수는 없다. 오늘 포인트를 말씀 제목에 맞게 전하고자 한다.

 

성전미문에 앉아 있던 중증 장애인을 치유하는 사건으로 인해서, 사도들이 복음 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솔로몬 행각에 모이게 된다. 좋은 시간과 좋은 공간을 얻게 된다. 기적이든, 선한 일이든, 자선이든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일이 있다면, 그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기회가 된다.

 

왜 그러냐면, 그런 것을 통해 사람들은 나에게 주목을 하게 되어 있다. 칭송 받는 일은 통해서 나의 잘 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때 나에게 귀를 기울인다. 마음 문을 연다. 사람들은 좀처럼 귀를 기울이거나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말,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해도 그 사람들에게 그것이 그렇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 문이 열렸을 때는 한 마디만 해도 눈물을 뚝뚝 흘린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 한 마디만 해도 눈물을 뚝뚝 흘린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회를 주시려고 하신다. 사도들은 그런 기회를 얻었다. 중요한 기회를 얻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막 전한다. 첫 번째로 이런 말을 한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질까? 와 대단하다, 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왜 우리에게 주목하느냐?”라는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거다. “그러면 우리가 너한테 주목하지 누구한테 주목하냐?”라고 하면서 그러면 누구에게 주목하라는 거야?”라면서 물음표가 생긴다. 바로 그 물음표에 답을 전해주는 것이다.

 

기적은 권능과 경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뭔가를 잘 하면 기적을 베풀 수 있을 것 같고, 뭔가 스페셜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은데, 그것을 위해서는 권능을 가져야 하고, 경건생활에 힘써야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착각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 스스로 경건하다. 그러니까 오후 세 시에 기도하러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았다. 자기들의 경건으로부터 권능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면 어디서 왔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어떠한 스페셜한 능력을 갖고 싶으신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 일수록 경건생활에 힘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시라. 이것이 무슨 말인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하나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게 질문해 보자. 지금 베드로가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에 대하여 얼마큼이나 확신하고 있는가?

 

오늘 사도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은 복음의 핵심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살아나신 생명의 주이시다! 그냥 주님이 아니라 생명의 주님이시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예언의 성취 à 우리가 구약성경을 봐야 하는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모두 구약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선지자들의 예언에 근거해서 그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뚱맞은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예언)대로 이루신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예언의 성취이다.

3)    만물의 회복과 예수님의 도래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별로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무슨 예언을 하셨는지 관심이 없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 지금 내가 당장 시집 가고 장가 가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 많은 것에만 관심이 있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계를 이끌어 가시는지, 어떤 식으로 운행 하시는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데, 거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것에 근거해서 시집 가고 장가 가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 많은 것을 꾸려 나갈 텐데, 그거랑 전혀 상관 없이 바쁘고 힘들게 살아간다.

 

하나님께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과 자기 자신의 교만 속에서 살아간다는 증거이다. 그렇다 보니, 사도 베드로의 복음이 우리 삶 가운데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도 베드로가 전하고 있는 복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 가슴이 얼마나 받아 들이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새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In the name of Jesus Christ, 이것이 갖고 있는 무한한 능력을 믿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야기 한다. “회개하라!” 여러분 회개하시라. 여기서 회개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번뜩 드시는가? 죄가 생각이 난다. 마음 속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어제 내가 장사하다가 손님이 한 5불 정도 더 나에게 줬는데, 그거 내 주머니에 넣는데…’ 우리는 이러한 것부터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회개란 이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회개그러면, 도덕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생각하니까 포인트를 잘못 맞추는 것이다. 이것도 사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 한 것이고, 자기 자신의 욕심과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두 나한테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회개하라’, 그러니까 뭐 나한테 잘못한 게 없나?’라고 하면서 모두 나한테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회개는 도적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거기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시집가고 장가 가고 논과 밭에 나가서 할 일 많은 것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회개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것에 매몰되어 있던 마음을 돌이켜서 나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게 집중하는 것, 그것이 회개이다.

 

그럴 때 비로소 도덕적으로도 우리가 서서히 변하면서 깨끗해지는 것이지,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하게 되면 사는 게 아니라, 죽는다. 도덕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은 금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습관을 통해서 젖어온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금방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결단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점차적으로 gradually 도덕적으로 깨끗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도덕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그것이 회개라고 생각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심을 전혀 갖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회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능력을 믿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사는가? 말로는 그렇지만, 진정으로 거기에 나의 삶을 걸고, 예수의 이름이 나의 모든 삶이라고 고백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가?

 

우리의 능력, 우리가 살아가는 능력,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기적들, 선한 일들,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일들, 무엇보다 구원은 다른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온다.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경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권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 들이시길 바란다.

 

그 놀라운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고, 삶 가운데 승리를 일구어 가시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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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